중국이 어제 톈안먼 광장에서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 기념식과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개최했다. 1만2000여 인민해방군 장병의 정연한 대오와 신무기들의 위용은 13억 중국인의 힘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 등 외빈과 함께 톈안먼 성루에 선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전·현직 중국 지도자들의 표정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덩샤오핑 전 국가주석이 제시한 중국의 대외정책인 도광양회(몸을 낮추어 몰래 힘을 기름)를 탈피, 경제에 이어 군사적으로도 굴기(우뚝 섬)했음을 만천하에 과시한 70분이었다.
중국인들에게 전승절 행사의 의미는 각별하다. 청일전쟁 이후 12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외세에 의해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했다가 다시 힘을 키워 마침내 미국과 함께 글로벌 파워로 우뚝 섰음을 선언하는 감격스러운 자리였다. 최근 중국의 주변을 압박해 가고 있는 미국과 일본을 향해 군사적으로 대응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점도 과시했다. 앞으로 중국이 가는 길은 오로지 중국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자신들의 각오를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어제 기념사에서 인민해방군은 조국과 인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세계평화를 수호하는 신성한 사명을 띠고 있다며 인민해방군 병력 30만명 감축 계획을 밝혔다. 중국의 국방력 강화가 평화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니 주변국들은 안심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중국을 보는 주변국의 시선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당장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다.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확장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데 이어 남중국해에 대규모 인공섬을 건설하는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은 과거에 빼앗긴 해양주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주변국들은 힘을 앞세운 패권주의로 인식하고 있다.
각국 정상들이 3일 오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抗日)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_경향DB
과거와 달리 21세기는 소프트파워 시대이다. 군사력·경제력만으로는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없다. 안으로는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고, 경제적 정의와 높은 문화를 구현하면서 밖으로는 평화를 실천하는 나라만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번 전승절 행사에 초대받은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중국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중국은 중국의 국력이 약해도 문제이지만 강해도 골칫거리라는 주변국의 인식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겪은 전쟁의 비극을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 주석의 다짐은 적절했다. 중국이 진정 굴기를 바탕으로 평화를 실천하기를 세계는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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