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상공을 방공식별구역으로 일방 선포한 도발적 태도는 그렇지 않아도 갈등하는 동북아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 조치에 자극을 받은 역내 국가들이 자국이 주장하는 영토와 일치하지 않는 식별 구역을 재설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이다. 일본 내에서는 독도·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상공을 식별구역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어도 상공까지 한국의 식별구역을 연장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그동안 동북아에서는 영토와 과거사 문제로 한국 대 일본, 중국 대 일본이 대립하고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는 중국 대 한·미가 대립해왔다. 이제는 그 위에 항공 문제라는 새로운 갈등이 추가될 상황이다. 이어도 문제로 한·중 간에도 미묘한 마찰이 나타나고 있다. 한·미·일·대만은 물론 호주도 중국 조치에 반발하면서 사태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런 중첩된 갈등 구조를 해소하려는 노력은 더디거나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미 . 중 외교장관 회담(출처 :AP연합)
특히 걱정되는 것은 이런 갈등이 결국 미·중 간 동북아 헤게모니 경쟁으로 귀결되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사실 이번 중국의 도발적 조치는 동북아에 중국 대 미국 동맹국의 대립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지난 26일 미국의 괌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52 전략폭격기 2대가 최근 중국의 식별구역에 포함된 센카쿠 상공을 1시간가량 비행한 것이 좋은 예다. 중국의 일방적인 선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시위였기에 미국은 중국 측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 중국은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면서 사전 통보 없이 구역에 들어오면 무장력을 동원해 ‘방어적 긴급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지만 이날 대응을 하지는 않았다.
미·중 간의 신경전이 심리전으로 끝난 것은 다행이지만, 이 사건은 요즘 미·중 경쟁의 심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처지에서 미·중의 주도권 경쟁은 재앙에 가깝다. 안보는 한·미동맹에 의존하고, 경제 문제는 중국과 뗄 수 없다. 어느 쪽을 배척하면서 다른 쪽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양자택일은 한국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한·중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하지만, 미·일이 동맹을 강화하고 그 동맹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허용처럼 군사적 역할을 강화하는 현실에도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큰 방향에서는 역내 협력 지향 및 갈등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영토 갈등과 역사 문제가 민족주의와 결부되면 역내 상황이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가지 길 중 어느 쪽이 될지 정부가 한가하게 관망할 처지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이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한 현명하고 치밀한 전략적 사고가 절실하다.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방공식별 구역 확대가 아니라 외교가 우선이다 (0) | 2013.12.02 |
---|---|
동북아에 자유주의를 허하라 (0) | 2013.12.02 |
[사설]이어도는 제2 독도 아니다, 이성적 접근을 (0) | 2013.11.25 |
[국제칼럼]외교를 국민과 하는 한국 (0) | 2013.11.25 |
[사설]또 밝혀진 한·일 과거사, 일본은 계속 외면할 텐가 (0) | 2013.11.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