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22일 역사적인 첫 미국 방문을 앞두고 전 세계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에 주목하고 있다. 두 사람의 회담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단지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와 세계 초강대국 대통령의 만남이라는 후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교황과 오바마 대통령은 종교계와 세속정치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인류가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도전에 대해 최근 거의 같은 목소리를 내왔다.
백악관은 그제 교황의 방미 일정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두 사람이 물질적인 문제보다는 지난해 바티칸 회담에서부터 서로 의견을 교환해온 공통의 가치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회담 의제가 될 공통의 가치에 대해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문제, 모든 사람에게 경제적 기회를 확대하는 문제, 기후변화 문제 등이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주로 백악관에서 언급한 의제들은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모순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전 세계인들의 관심도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과 환경파괴에 대해 두 지도자가 어떤 메시지를 만들어낼지에 집중돼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1월 ‘복음과 기쁨’이라는 권고문에서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체제야말로 사회병폐의 뿌리이며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자”라며 가난과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와 맞서 싸우는 의무를 현대판 십계명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교황의 이 같은 자본주의 비판은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아직 공식적인 논평을 한 적이 없다. 따라서 이번 워싱턴 회담은 교황의 세계관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이 공식화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과 교황의 견해는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백악관 보좌관들도 “오바마 대통령은 교황의 리더십에 깊은 존경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리더십이 전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7일 노동절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낙수효과에 대한 교황의 어법을 빌려 “억만장자의 세금을 깎아주고 기다리기만 하면 하늘에서 부가 모든 사람에게 흘러내릴 것이라는 믿음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_AP연합뉴스
사회적 양극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교황과 오바마 대통령의 만남이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 특히 교황은 1년 전 청와대 연설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할 것”을 요청했다. 세월호 유족,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시위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당시 교황이 관심을 가졌던 대표적인 소외된 이웃들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이들은 정부의 관심 밖에 밀려나 있다. 고공농성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위기의 노동자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다.
교황이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것을 전 세계 양심에 호소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이 부자의 성장을 통한 낙수효과가 맹목적 믿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확인시키고 한국도 1%가 아닌 99%를 위한 사회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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