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에서 4대 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서시(西施)는 잘 훈련된 스파이였다. 춘추시대 말기 월나라 재상 범려는 인접한 오나라를 치기 위해 서시를 미인계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4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막을 올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항저우 _ 연합뉴스
남성을 유혹하는 법과 철저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서시는 오나라 왕 부차에게 접근해 20년 가까운 세월을 후궁으로 지냈다. 부차로 하여금 쓸데없는 토목공사와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겼고 결국 오나라는 월나라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미모에 대해선 서시가 물속을 들여다보는데 눈이 마주친 물고기가 넋을 잃고 밑으로 가라앉을 정도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임무를 완수한 뒤 스스로 강에 몸을 던졌다는 설, 월나라 왕후에 의해 살해됐다는 설 등이 분분하다. 일부 중국인들이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를 제쳐두고 그를 4대 미인 중 으뜸으로 치는 것도 애국심, 희생정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영국 정부가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한 자국 관리들에게 중국 스파이들의 미인계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내렸다. 항저우는 서시를 낳았고 예로부터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물이 좋기 때문이다. 수나라 양제가 대운하 건설을 마치고 항저우에 미녀 3000명을 데려왔는데 그가 객사하는 바람에 이들이 눌러앉았다는 등 이유도 다양하다. 2008년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방중 시 수행 관리가 중국 정보요원의 미인계에 넘어가 휴대전화와 서류를 분실한 사건도 있었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긴장하는 건 당연하다. 한국과 일본은 항저우와 가까운 상하이에서 스캔들에 휘말린 경험을 갖고 있다. 2004년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직원은 주점 여종업원과 깊은 관계를 맺은 후 정보제공 압력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한국도 2011년 상하이 총영사관의 ‘덩신밍 스캔들’로 떠들썩했다.
여성을 도구화하는 미인계는 사라져야 할 공작정치다. 중국을 미인계가 난무하는 나라로 섣불리 오해해서도 곤란할 것이다. 중국은 대규모 국제행사를 개최할 때 손님들을 환대하기로 유명하다. 물론 국익은 철저히 계산한다. 항저우 미인계 주의보는 G20에 참석한 국가들이 중국의 환대에 취해 냉정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경고로 들린다.
오관철 논설위원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두테르테의 모험 (0) | 2016.09.08 |
---|---|
[사설]사드 갈등 해소에 실패한 한·중 정상회담 (0) | 2016.09.06 |
[국제칼럼]부르키니 금지와 이슬람공포 (0) | 2016.09.06 |
[아침을 열며]벳푸 온천에서 체감한 일본의 상인정신 (0) | 2016.09.05 |
[사설]브라질 호세프 탄핵과 남미 좌파의 과제 (0) | 2016.09.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