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이틀 앞둔 21일(현지시간) 런던 북서쪽 외곽에 위치한 웸블리 아레나. 공영방송인 BBC는 6000여명의 유권자를 초청해 ‘유럽연합(EU) 국민투표 대토론회’를 열었다.
타운홀 미팅이나 TV 토론이 일상화된 영국에서도 이처럼 대규모 군중을 상대로 토론회를 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국민투표를 앞두고 마지막이 될 이번 토론에서 잔류파와 탈퇴파 양측은 모두 한 표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BBC 브렉시트 대토론회 주요 발언. _경향DB
이날 토론회에는 양 진영에서 3명씩 패널이 나와 공방전을 펼쳤는데, 특히 두 진영의 리더이자 전·현직 런던시장인 보리스 존슨과 사디크 칸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이 토론회는 BBC가 TV와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토론회는 오후 8시부터 시작됐으나 참석자들은 평일임에도 낮부터 모여들기 시작해 4시간 전에 이미 장사진을 쳤고 1시간 전 대부분 입장을 마쳤다. 구호를 외치거나 세를 과시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상당수가 옷이나 부착물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표명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어느 쪽에 투표할지 이미 결정을 한 사람들로 보였고,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응했다. 행사장 밖에는 시민단체 회원 등 입장하지 못한 지지자들이 전단을 나눠주거나 갖가지 퍼포먼스를 펼치며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런던 교외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필립 오코너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도 들어보고 패널들에게 직접 질문도 하고 싶어서 참석하게 됐다”면서 “그렇지만 이 토론이 내 결정을 바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고교생인 제임스 롱은 탈퇴 캠프에서 넉 달째 캠페인을 돕고 있다. 그는 “언론에서는 마치 젊은 세대들은 잔류 찬성이 많은 것으로 보도하지만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 의견에 따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탈퇴 지지가 더 많다”면서 존슨 전 시장 등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보고 싶어서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랑한다면, 잔류를” 영국 BBC방송이 21일(현지시간) 주최한 ‘유럽연합(EU) 국민투표 대토론회’가 열린 런던 북서부 웸블리 아레나 앞에서 EU 잔류 지지자들이 “사랑을 택하세요, 잔류에 투표하세요”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다. 런던 _ 정동식 통신원
참석자들은 자신이 한쪽을 지지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면서도 이번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도 높였다. 60대라고 밝힌 매기 길패트릭은 “나라가 반으로 나뉜 것 같아 지난 몇 주 동안 즐겁지 않았다”면서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얽매여 국가의 중대한 사안을 간단한 질문 하나로 결정하려 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토론이 시작되자 참석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패널이 발언을 할 때마다 열렬한 박수로 성원을 보냈다. 맨 먼저 이슈가 된 것은 통상과 경제 문제였다. 잔류를 지지하는 노동당과 탈퇴를 주장하는 보수당 정치인들이 나서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최대 이슈는 역시 이민 문제였다. 이민자 가정 출신인 칸 시장은 탈퇴 진영에서 줄기차게 이민자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에 대해 “공포 프로젝트를 넘어 증오 프로젝트”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또 터키가 곧 EU에 가입할 것처럼 써놓은 탈퇴 캠프의 전단을 꺼내 보이며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청중 한 명이 나서, 영국 정부가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연간 이민자의 수는 몇 명인지 따져 물었다.
탈퇴 진영 패널로 나온 안드레아 리드섬 에너지장관은 브뤼셀이 영국 법규의 60%를 통제한다며, EU를 “무임승차자(gravy train)”에 비유했다. 존슨 전 시장은 잔류 진영이 “우리나라를 깎아내리고 있다”며, 마무리 발언에서 “탈퇴에 투표를 한다면 (투표일인) 목요일은 우리나라의 독립기념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반대 진영의 루스 데이비슨 스코틀랜드 보수연합당 대표는 영국이 유럽 안에 머무는 편이 낫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주장이라며 “금요일 아침에 과거로 회귀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BBC 정치에디터 로라 쿠엔센버그는 탈퇴 진영이 “감정적인 열광”을 최대한 불러일으켰으나, 잔류 쪽 역시 한동안 사그라지는 듯했던 열정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아레나 바깥에서도 논쟁은 이어졌다. 런던 증시에 상장된 100대 기업(FTSE 100) 중 51개 기업 임원진 1280명은 일간 더타임스에 EU 회원국으로 계속 남는 것을 지지한다는 기명 서한을 보냈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수장인 니콜라 스터전 수석장관과 전임 수석장관 4명도 EU에 남는 것이 “일자리와 투자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성명을 냈다.
런던 통신원·전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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