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선거방식이 선거혁명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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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진화하는 선거방식이 선거혁명 낳는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6. 4.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이런 잔인한 카피를 내세워 광고를 했던 기업이 있다. 이 문구는 어느새 한국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슬로건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선거에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아무리 박빙의 승부를 펼쳤더라도 결국 1등을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뜻대로 정책을 집행한다. 그리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 고지로 달려가기가 선거레이스에서 펼쳐진다. 한명숙 후보를 향한 뻔뻔한 검찰의 표적수사도, 노회찬 후보가 참여하는 방송토론에 참석을 거부한 오세훈 후보의 행각도 조소를 사는 행위였으나, 결국 이러한 일련의 전략들이 십시일반의 효과를 거두어, 그들은 최후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정부 여당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메시지는 쩌렁쩌렁 울려퍼졌으나, 건설적인 정책대결이 이루어진 선거였는가에 대해선 많은 아쉬움이 있다. 정책대결은 실종되고, 집권세력의 실정을 심판하는 선거로 거대 양당이 주거니 받거니 권력을 뺏고 빼앗기는 데만 선거가 이용된다면, 서민들의 삶을 보살피고 헤아려줄 정책개발은 요원해질 뿐이다. 가장 우수한 공약을 준비한 것으로 평가받았을 뿐 아니라, 출중한 논리로 토론회에서 준비된 기량을 선보인 심상정·노회찬 두 후보가 도중에 사퇴를 해야 했거나, 혹은 완주함으로써 들어야 했던 비난은 이번 선거가 남긴 뼈아픈 과제 중 하나로 남는다. 진보정당은 언제까지 거대 보수정당을 위한 들러리로 남아야 하며 그 지지자들은 언제까지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면서도 마음의 짐과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선투표 방식에서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프랑스는 모든 선거에서 1차투표를 치른 후 1~2주 뒤 결선투표를 진행한다. 1차투표에는 모든 정당들이 레이스에 참여하고, 유권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에 별다른 계산 없이 꼼꼼히 정책을 살펴보고 투표한다. 1차에서 과반의 표를 얻는 후보자가 없을 경우, 1·2위 득표를 한 2명의 후보가 결선투표에 오른다. 이런 방식은 모든 정당들이 1차 투표에서 마음껏 정책 대결을 펼칠 수 있게 해주고, 군소정당들에도 단일화의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사표의 위험이 없는 결선투표에서 마지막 심판을 하는 것이다. 루아얄과 사르코지가 격돌했던 2007년 선거에서 결선투표의 투표율은 무려 84%를 기록했다. 선거의 집중력도 탁월하다. 두 달 전 치러진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좌파가 알자스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도 이 같은 결선투표 방식에 있었다. 1차투표 후, 1·2위 득표한 양 정당에 모든 군소정당들이 연합을 하면서, 유권자들을 기꺼이 결선투표장으로 유도했던 것이다.

선거는 살아 숨쉬는 유기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세상이 진화함에 따라 선거의 형태와 방식도 진화해야 한다. 15년 만의 최고 투표율임에도 불구하고, 54.5%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투표율 71%에 못 미친다. 가능한 한 낮은 투표율을 기대하는 집권세력, 그리고 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선거구조에서 야권이 승리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 크다. 더 많은 유권자가 참여하고, 정책의 불꽃 튀는 대결이 이루어지며, 토론회 한 번 할 때마다 후보의 지지율이 시시각각 변동하는, 살아 숨쉬는 선거는 선거방식의 진화를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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