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지난 화요일, 햇빛 가득하던 파리 시내에 요란한 자동차들의 클랙슨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가보니, 양쪽 차선을 완전히 점거한 대형 트랙터들이 꼬리를 물고 긴 행진을 하고 있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 항의하는 프랑스 전역의 농민들이 1500대의 트랙터를 타고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대낮에 시가지에 진입한 탱크처럼 긴 트랙터 대열의 시각적 효과는 위협적이었다. “사르코지, 너의 정책은 빵점이야!” “브루니(사르코지 대통령 부인), 우린 사랑과 물만 먹고 살 순 없어.” “우리 농업을 지키는 데는 대가가 필요하다.” 슬로건들은 단호했지만, 시위는 유쾌했다. 시민들은 그들을 향해 박수치거나, 미소를 보내며, 그들의 싸움을 지지했다.
전통적 농업국인 프랑스, 식량자급이 가능했던 이 나라의 농업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사르코지가 집권한 3년 전부터는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자유무역체제 하에서 농민들의 수익은 더 이상 농업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떨어져갔다. 그들은 보조금과 세금 감면을 요구했다. 식량주권과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마땅히 치러야 할 비용임을 강조하며….
많은 농민들이 땅을 떠났다. 지난 10년간 프랑스 농장의 숫자는 30% 감소해 이제 1만여개만 남았다. 자살하는 농민, 땅을 떠나는 농민들의 이야기는 이제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세상 그 어느 나라의 농민도 여유롭고 풍족하지 못하다.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사람들은 점점 더 잘 먹고 싶어하는데, 그럼 이들이 포기한 식량 생산은 누가 독점하는가. 궁극적으로 농민의 희생을 이익으로 챙기는 자들은 소수의 다국적 종자기업들이다. 1·2차 세계대전에서 폭약, 전투용 가스 등을 만들던 다국적기업들은 오늘날 전 세계 종자·비료산업을 장악하면서 식량생산 주도권을 쥐기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고엽제, DDT를 만든 회사 몬산토는 현재 전 세계 유전자변형작물(GMO) 종자 특허의 90%를 보유하고 있다. 소위 죽음을 파는 회사들, 그들과 결탁한 WTO, 정치권력은 인류의 삶을 위협한다. 그들은 유독성 화학물질로 지구의 토양을 초토화시키고, GMO와 강력한 비료로 노동력을 최소화하는 기업농을 지휘하면서, 농민을 땅에서 내쫓는다. 거기서 생산된 작물들은 우리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인체를 공격한다. 생명의 근원인 땅에 대한 착취는 가부장적 자본이 창궐하는 이 시대에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다. 식량 자급률이 26%밖에 되지 않는 대한민국 농민들은 삽 하나 머리에 든 권력의 땅에 대한 착취로 토지를 잃고, 서민들은 살아갈 터전을 잃는 중이다. 우리가 삶을 비로소 누릴 수 있게 되는 첫 조건은 우리의 삶이 싹튼 그 땅에 평화롭게 뿌리내리는 것인데.
시위에 참여한 한 프랑스 농민의 말이 가슴을 적신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즐거운 건,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지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죠. 서로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대부분의 시간에 우린 완전히 혼자거든요. 그거 아세요? 착취가 강화될수록 사람들은 서로 분리당하는 거.”
대지의 여신, 풍요의 여신이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베풀 수 있도록, 땅을 착취한 권력을 멀리 보내고, 땅을 위로할 긴 시간이 이제 필요하다. 만국의 농민, 노동자 그리고 삶을 착취당한 모든 이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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