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더글러스 러미스 칼럼'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더글러스 러미스 칼럼29

오키나와, 태평양의 쐐기돌 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인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다음은 내가 5월19일 아이치(愛知현 아이치대학교에서 했던 강연의 일부이다. 냉전 중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태평양의 쐐기돌(keystone)로 불렀다. 그때 쐐기돌의 의미는 미국의 대공산권 봉쇄 차원에서 이해됐다. 이제 냉전은 끝났다. 미국은 선제공격 정책을 더 선호해서인지 봉쇄 정책을 버렸다. 그런 점에서 쐐기돌이라는 메타포는 더 이상 원래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일본인들은 일본 내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있는 이유가 오키나와의 전략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어떤 사람이 내게 말했다. “당연히 오키나와에 기지를 둬야죠. 그게 더 가깝잖아요.” “어디에 더 가깝다는 말이죠?” 내가 물었다. 그는 답하지 못했다. 그가 만약 북한.. 2012. 5. 30.
오키나와에 부는 변화의 바람 더글러스 러미스 |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내가 오키나와에서 12년 쯤 되었을 때 오키나와는 변하기 시작했다. 오키나와가 어떻게 변했는지 이해하려면 오키나와의 역사적 상황을 한국,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오키나와와 한국은 대만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메이지 시대에 식민지로 되었다. 당시만 해도 팽창하던 일본 제국 안에서 오키나와와 한국에는 비슷한 정책이 적용되었다. 법적으로 오키나와인들과 한국인들은 일본의 신민이 되었다. 그들은 일본식 새 이름을 부여 받았다. 일본 국가신도라는 새 종교도 주어졌다. 일본어를 배우도록 강요 당했다. 일본식 문화의 규칙에 따라야 하는 압박도 받았다. 한국의 식민지 기간은 35년 뒤 끝났다. 그 기간은 일본의 동화 정책이 성공을 거둘 정도로 길지는 않았.. 2012.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