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길인가, 베네치아의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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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파리의 길인가, 베네치아의 길인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4. 2.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여행 중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물의 도시라는 찬사를 누려온 이 매혹의 도시는, 화려한 오페라 공연이 끝나고 지우지 못한 흔적만 남은 무대처럼 폐허의 인상이 역력하다. 도시의 골목골목에는 여전히 에메랄드빛 물결이 출렁이고, 찬연한 과거를 연상케 하는 건축물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베네치아 상인들의 숨결에서는 불안을 머금은 공격성이 느껴지고, 산 마르코 광장을 뒤덮은 대형 향수 광고판은 베네치아의 슬픈 오늘을 대변해준다.



30년 사이, 베네치아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이제 6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생활기반으로서의 도시기능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베네치아 주민들의 이탈은 생존의 불안을 느낄 만큼의 잦은 침수가 그 1차적 원인이다. 지구온난화라는 전 지구적 요인뿐 아니라, 산업화 과정에서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로 지반이 가라앉는 데다,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시 당국, 부족한 재정을 오로지 조세로 메우기 위해 급격히 인상한 세금, 주변 도시보다 3배나 높은 물가 등 정책 실패가 더해졌다. 마침 베네치아 시장 선거가 있었다. 행정당국의 경각심과 정책의 쇄신을 촉구하며, 베네치아 장례식 퍼포먼스까지 벌인 주민들은 잇단 스캔들의 주인공 베를루스코니 내각의 주요 인물 레나토 브르네타를 물리치고 중도좌파 조르조 오르소니를 선택했다.

프랑스에서도 2주 전 지방선거가 있었다. 좌파연합은 집권당을 누르고, 프랑스 전역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사르코지라는 선명한 우파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하였을망정, 국민 대다수의 이해를 역행했던 그의 실정에는 가차없는 심판을 한 것이다. 선거 후 사흘 뒤 실시된 대규모 파업과 집회에는 얼굴에 피멍 든 모습을 한 사르코지가 담긴 스티커가 도시 곳곳에 나붙었다.

유럽의 도시를 다니다 보면 파리가 결코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친절한 도시도 분명 아니다. 오히려 거만하고 개인주의적인 파리지엥의 이미지는 관광객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파리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을 유혹하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베네치아와 파리, 모두 조상의 빛난 유산을 밑천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파리 사람들은 단지 조상의 덕에 기대 장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1789년 시민혁명에서부터 파리코뮌, 레지스탕스운동, 68혁명에 이르기까지 권위와 구시대의 유산에 수동적으로 운명을 맡기지 않고, 날선 비판의식과 역동적인 실천으로, 그들의 삶이 존재로 가득하게 하길 멈추지 않았다. 중·고생들은 정부의 반교육적인 교육개혁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교사들은 기꺼이 총파업에 동참한다. 구애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람들을 매혹하는 파리의 매력은 이런 삶에 대한 당당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학자들은 2030년이면 베네치아에 주민이 한 명도 없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 와중에 한국 정부는 새만금을 2020년까지 한국의 베네치아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4대강으로 인한 국론분열만으로도 이 나라 에너지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것만 같고, 가라앉은 해군함은 속수무책으로 바닷속에 있는데, 물로 얻은 정권은 물로 허물어질 것인가. 6월2일의 선택이 우리에게 해답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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