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가 아닌 정책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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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이미지가 아닌 정책철학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4. 16.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지난 14일, 세느강변 도로를 축소하여 녹지공간을 확보하는 강변정비사업계획을 내놓았다. 2012년까지 세느강변 일부 도로를 차단, 축소하여 녹지와 휴식, 문화공간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신속한 소통이 생명인 대도시에서 적잖은 반발이 예상되지만, 쾌적한 도시 만들기에 방점을 찍은 그의 일관된 정책철학은 이 계획을 긍정적으로 읽게 한다.

 


선거 전, 동성애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으로 유명한 들라노에 시장은 2003년 파리 시장에 당선, 2008년 재선된 후 지금까지 친환경도시 만들기에 노력을 집중해왔다. 2020년까지 파리시는 자동차 수를 40%, 온실가스 배출량을 6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녹색’은 지구촌을 휩쓰는 최상의 정치슬로건이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들라노에의 정책의지는 2006년 지상전차(tram)의 도입으로 처음 실천된다.

1차로 절반이 개통되어, 현재 하루 11만명을 실어 나르는 주요 교통수단이 되었고 2012년 전 구간이 완성되면 하루 이용자 수는 파리 인구 10%에 해당하는 27만명으로 늘어난다. 파리시는 전차 설치를 위해 왕복 6차선을 3차선으로 줄였다. 과감한 차량통행 억제정책으로 우파의 거센 반발이 있었으나 2년여에 걸친 설득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시내 자동차 사고는 40% 감소했고, 시민들은 맑아진 공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들라노에가 추진한 또 하나의 교통혁명은 벨리브. ‘자전거(velo)’와 ‘자유(liberte)’의 합성어인 벨리브는 공공 자전거 임대제도로, 친환경 교통혁명을 주도하는 파리시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007년 도입된 이 제도는 1년 만에 하루이용자가 18만명에 이를만큼 성공궤도에 즉시 진입했다. 파리시의 ‘자전거 혁명’을 배우기 위해 파리시 교통국를 찾는 해외관료들의 방문이 수개월치까지 예약되어 있을 정도다. 벨리브에 성공한 파리시는 내년에 공공 전기자동차 임대제도도 도입한다.

같은 날,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장 재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공교육 재건을 대표공약으로 내세웠다. 한나라당과 우리나라 공교육 사이의 악연을 지난 4년간 보아온 한 사람으로서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사교육과 학교폭력, 준비물 없는 학교를 만들고 하위 30%까지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밝혔다. 오 시장의 공약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지만, 그의 의지에 신뢰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무상급식은 빨갱이 정책이라며, 경기도 교육감이 시도하던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한 것이 한나라당 도의원들이다. 대학 등록금 반값을 공약했다가, 그러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대통령도 같은 당 소속이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정책들을 시행하고, 뇌물을 거둬들여 교장들과 함께 깊은 타락의 수렁에 투신하는 동안 오 시장은 이를 수수방관하지 않았는가. 오 시장이 당론을 벗어난 사람이었다면, 공교육 파괴가 자행되는 동안 한 번쯤 소신을 밝혔어야 옳다.

오 시장의 지난 4년은 디자인, 한강르네상스, 광화문광장, 스노보드대회로 이어지는, 일관성과 정책철학이 집약되지 않는 행정들로 점철되었다. 정책의 연속성을 내세우며 연임을 호소하지만, 그가 지금 내세우는 주요 공약엔 과거 그가 역점을 두어온 사업은 없다. 듣기 좋은 말만 일관성 없이 나열하는 선거는, 유권자들이 대거 ‘묻지마 투표’에 나서면서 정책대결이 부재했던 지난 대선으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정책철학과 의지가 검증되지 않는 선거에선, 이미지정치와 미사여구만이 판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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