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양지에서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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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생명은 양지에서 싹튼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3. 19.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최근 한국에 낙태 논란이 있다기에, 옛날에 결론난 얘기가 왜 새삼 거론되나 하다가, 낙태 금지가 정부의 저출산대책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 기겁했다. 정부의 이런 발상은, 자신은 술 취해 매일 밤늦게 들어오면서 월급봉투만 던져주면, 아내는 일도 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시부모한테 효도도 대신해주겠거니 기대하는 한국 남편들 모습과 닮았다. 가열되는 경쟁 교육, 살인적 등록금, 자살하는 아이들, 비정규직 900만, 세계 1위 성산업국…. 이 지경에서, 낙태만 금지하면 출산율은 상승한다? 지독한 가부장적 사고만이 이런 전근대적 발상을 감히 정책이라 부를 수 있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가 연 외신기자 간담회의 ‘룸살롱 사건’도 이 같은 정권의 무감각을 잘 대변해준다. 한 외신기자가 “한국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룸살롱 등 잘못된 직장 회식문화 때문 아니냐”고 질문한 데 대해, 대변인은 “일국의 장관에게 그런 부적절한 단어 사용” 운운하며 한국 폄훼, 황당 발언으로 치부했다. 장관은 “한국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커져 오히려 저출산 문제가 생기고 있는데 룸살롱 관련은 전혀 잘못된 정보”라고 받아쳤다. 이 질문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2배로 증액된 접대비 한도액, ‘접대비 실명제 폐지’와 관련한 것이었다. 한국 기업의 평균 접대비는 외국 기업의 100배다. 연 20조원에 이른다는 접대비로 남성들은 거대하고 끈끈한 연대를 형성하며, 업무상 거사들은 그 안에서 결정된다. 그 질퍽한 연대에서 안전하게 배제된 여성들에게 남는 자리는 주변적인 업무뿐인 걸 몰라서들 그러시나.

여성의 왕성한 사회활동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면, 유럽 최대 출산국 프랑스에서 91%의 국민이 “가정은 여성의 일자리가 아니다”라고 답한 최근 설문조사 결과는 어찌 설명할까. 교육과 의료가 공공서비스로 제공되면서, 각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통로가 넓게 열려 있는 사회에서 행복한 다산의 조건은 생성된다. 프랑스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50%는 혼외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혼외에서 아이를 낳는 일로 사회적 지탄도 경제적 곤궁도 겪지 않는다. 아이는 엄마가 낳지만, 시민으로 키우는 건 사회가 함께한다.

프랑스에선 1975년 낙태가 합법화됐다. 이는 68년 이후 지속된 권리와 성에 대한 자유를 위한 여성들의 투쟁의 결과였다. 99년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거리에 서 있는 콘돔자판기를 보고, 첨엔 이 과감한 성적 개방성이 놀라웠다. 그러나 사랑과 성에 대해 솔직한 사회 분위기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억압하는 권위적 질서에 대항해 쟁취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콘돔자판기도 방종이 아닌 자율의 상징으로 보였다. 여성이 자기 몸과 자기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낙태 합법화를 위해 이곳 사람들이 도달한 합의다. 힘겹게 모두가 학습하며 얻어낸 사회적 합의는 좀처럼 후퇴하지 않으며, 이는 오늘 출산 대국 프랑스의 밑거름이기도 하다.

낙태를 줄이기 위해 사회가 갖는 의무는 철저한 성교육. 프랑스에선 부모가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성에 대해 정확하게 긍정적으로 말해주고, 학교는 ‘안전한 사랑’을 가르친다. 생명은 양지에서 움트는 법이다. 낙태와 저출산을 연결시키는 아둔한 이명박 정부. 거꾸로 돌기 시작한 시계는 이들을 1세기 전으로 끌고 가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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