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행복을 찾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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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당신의 행복을 찾으셨어요?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3. 5.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과일가게에 들어가 과일을 골라 계산대에 놓는데, 가게 직원이 내게 묻는다. “당신의 행복을 찾으셨어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내 인생에서 행복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순간 헤아려보았다. 심각해진 내 얼굴을 보며, “당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골랐느냐”는 말이었을 뿐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이런 표현이 있다는 걸 모른다면, 이건 굉장히 심오한 질문이에요” 했더니, 그는 바로 응수한다.

“그렇죠. 언제나 우린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예술을 통해서나, 사랑을 통해서나, 자신이 가치를 두는 어떤 일을 통해서. 결국 모두 뭔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건데, 사랑할 땐 다음날 죽어도 후회 없도록 사랑해야죠. 삶은 늘 죽음 옆에 있는 거니까, 내일 삶이 멈추어도 후회 없도록 사랑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행복을 찾았어요?”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고, 당신은요? 하고 물었다. “그렇죠. 사랑을 통해서. 정상에서 바닥까지 가봤고, 지금도 행복을 찾고 있어요.”

초면에 이런 얘기를 나누고, 엷게 서로 미소 지으며 헤어졌다. 가게를 나서니, 길엔 노숙인들이 앉아있었다. 동전 하나 줄 수 없느냐고 하기에 가볍게 무시했다가 사과를 줘도 된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사과라면 많이 있으니 줄 수 있다면서 두 개를 건넸다. 청년은 “골덴사과네” 하면서 신나게 받았다. 캐셔 청년과의 예기치 않은 대화, 노숙인에게 돈 대신 사과를 건네고, 그걸 즐겁게 받은 그들을 통해 작은 ‘행복’이 내 안에서 순간적으로 작렬하는 걸 느꼈다.



슈퍼마켓의 캐셔, 거리의 청소부, 노숙인, 우리에게 그들은 투명인간에 가깝다. 그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우린 언제나 기록을 경신하는 사람처럼 질주하는 삶을 사니까. 그러는 동안, 살면서 우리가 만나는 그 모든 사람들은 벽이 되고, 기계가 되고, 도구가 된다. 우리도 고객이 되고 행인이 될 뿐이다. 내가 그들을 소외시키는 동안 내 안의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인간도 같이 소외된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유럽의 다출산국 프랑스를 찾은 한 기자는 프랑스 사회의 출산·육아정책보다 개인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프랑스 사람들의 의식이 부럽더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주위에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회의식이 부러웠다고 했다. 사회적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각자 내 안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이들에게 정착돼 있고, 그러한 삶의 태도가 성공보다 ‘행복’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이 내전국 수준의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한국 사람들이 내전국 수준의 불안한 삶을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 또한 우리 안에서 형편없이 비틀거리고 있는 행복의 기준을 어떻게 바로 세우는가에 달려 있다. 브라이언 오서는 김연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행복하지 않은 소녀였고 그녀를 행복한 소녀로 만드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저 엄청난 긴장의 순간에 저 소녀가 평화로운 미소를 피워올릴 수 있는 비결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피겨스케이팅을 하든, 캐셔를 하든, 행복하지 않으면 지는 거다. 지금 당장 행복해질지어다. 정부가 뭘 어떻게 해주지 않아도, 당신 곁에 오서 코치가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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