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받아들이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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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자유를 받아들이는 훈련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 22.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은퇴 직후 1년간, 평균 10년이 젊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얘기다. 아침마다, 몸이 아파도, 폭설로 길이 덮여도, 이불을 걷어차고 정해진 시간까지 일터로 향해야 하는 노동의 ‘의무’를 벗어던진다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늦잠을 자도, 가고 싶은 곳에 가도,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해도 되는 ‘자유’를 획득한다는 것은.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소식을 접하며 살짝 웃었다.

12년 전,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일의 중압감을 벗어던지고, 먼 나라로 훌훌 떠나왔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파리에 와서 체류증을 갱신하느라 찍은 증명사진을 한국에서의 ‘직딩’ 시절 증명사진과 비교해 보니, 전자가 10년쯤 젊어 보였던 것이다. 스물아홉에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를 배우며 새로운 삶을 일구던 그 시절, 난 여전히 아침마다 학교에 늦지 않으려고 몽파르나스 지하철역의 긴 환승통로를 뛰곤 했다. 한 해 전, 혜화지하철역의 긴 계단을 헉헉거리며 뛰어올라갔던 것처럼. 그런데 그 사이 나는 젊어지고 있었다. ‘즐거움에 근거한 노동’을 하는지 아닌지의 차이가, 얼굴에 나타났던 회춘(!)의 기적을 설명해 준다.

프랑스 사람들은 60대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답한다. 비로소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몸이 여전히 말을 들어주는 시기. 물론 그들의 행복은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탱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에 크게 기인한다. 파출부든 은행원이든 60세 무렵이면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 연금을 타며 생활할 수 있다.

더 이상 돈을 벌어야 할 의무도, 재테크를 해야 할 강박감도 사라진다. 그러나 매년 4개월씩 평균수명이 연장되는 고령사회 프랑스에서 말년의 자유는 점점 길어지고, 결국 행복에의 정복은 자유에 대한 정복의 문제로 귀결된다. 자유를 길들이고 즐기는 것은, 아니 무엇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뭔가를 생산해 내야만 의미있는 삶인 것처럼 세뇌되어 온 우리의 사고는 혁명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우리가 아는 한국 퇴직자들의 익숙한 풍경은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어찌할 줄 모르고, 무력감에 빠진 남자들이다. 우정을 나누는 친구도, 취미도 가꾸고 살아오지 못한 그들이 활기차게 삶을 누리는 아내 곁을 맴돌며 귀찮게 굴어, 남편들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는 ‘은퇴남편증후군’이 사회문제화할 정도니, 은퇴 후 젊어지기는커녕 옆 사람까지 늙게 만든다.

마르크스의 사위로 더 유명한 폴 라파르그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서 노동에 대한 열정, 숭배에서 벗어날 것을 역설했다. 노동을 숭배하고 금욕을 강제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착취하기 위해 조작해낸 생각일 뿐, 하루 3시간의 노동만으로 인류는 충분히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으며, 과잉노동이 과잉생산을 만들고, 상품의 과잉은 구매부족, 폐업, 노동계층의 가난, 지배계층의 과소비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살아가는 일이 마치 무언가를 소비하는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현대사회에서, 19세기에 탄생한 그의 생각은 모던하게 느껴진다.

노동의 의무가 내게서 사라질 때, 내가 기꺼이 주물럭거리고 싶은 나의 즐거운 노동 혹은 나의 즐거운 휴식은 무엇인지, 미리 생각하고 훈련한다. 길고도 찬란한 제3의 인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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