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폭력은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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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정신적 폭력은 범죄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 8.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올해부터 프랑스에선 커플 간에 행해진 정신적 폭력이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이들에 의한 정신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고발한 책 <정신적 폭력>(마리프랑스 이리고옌)이 출간되어, 프랑스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지 10년 만의 일이다. 이 책 이후 프랑스 사회는 ‘정신적 폭력’을 일상에 만연한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게 되었고, 정부는 비로소 이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법적인 처벌을 공식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가까운 사이, 특히 부부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은밀하게 행해지는 모욕, 무시, 위협, 멸시…. 결국 자존감을 완전히 파괴하고, 정신적인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일상적 괴롭힘의 피해자는 흔히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가정은 애당초 ‘사랑’의 이름으로 구성되는 보드라운 결을 가진 사회의 기초단위지만, 동시에 가부장을 중심으로, 권위가 무기가 되고 힘이 되는 권위주의 사회를 훈련시키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 평화로운 가면 뒤에 너무 자주 숨어있는 야만의 얼굴을 사회가 외면하면 할수록, 시들어가는 영혼들의 신음은 깊어진다.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사회적 모럴로 정착하면서, 사람들은 창조적 삶의 주체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가 굴러갈 수 있도록 열심히 복무하다가 어느날 폐처분되는 타이어로 취급당한다. 그들이 삼켜 넘겨야만 하는 스트레스는 어디로든 배출되고, 가장 먼저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의 존재를 침식시킨다.



수 년간 가족으로부터 정신적 폭력에 시달린 사람들은 자존감을 잃고, 가해자가 늘어놓는 흔한 변명, 즉 “원인은 너에게 있다”는 논리에 부지불식간에 설득당한다고 피해자들은 진술한다. 극도로 위축된 이들은 자신을 점점 추하고 약한 존재로 느낄 뿐,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부터 탈출하는 일을 좀처럼 감행할 수 없다. 더욱이 한국 같은 ‘스펙 지상주의’ 사회에선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진료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전문의에게조차 호소하길 꺼린다.

자존감이 파괴된 사람에게 용기를 내라고 옆 사람이 한마디 건네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되지만, ‘당신이 당신의 남편 혹은 부모로부터 심각한 정신적 공격을 당했고, 그들이 당신에게 입힌 피해는 법적 처벌이 가능한 범죄이다. 그리고 당신과 같은 피해자가 이 사회에 수만 명이다’라고 말해주는 것, 그들의 피해를 사회적·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 자체로 피해자들이 홀로 짊어졌던 문제를 사회가 함께 걸머지면서 문제 해결의 시작점에 서게 해준다.

2009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공포를 불러일으켰던 단어는 신종플루였지만 20, 30대 청년들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원인은 자살이었다. 육체적 폭력에 대해서는 법이 개입하지만,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삶을 일궈나갈 야성을 거세시키는 정신적 폭력에 대해 우린 무방비 상태이다. 권위와 공포로 유지되는 사회일수록, 거기에 저항하며 각자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예방이 더욱 절실하다. 당신은 소중하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의 인격을 짓밟을 수 없다고 당신의 부모, 남편, 아내가 말해주지 않을 땐, 사회가 말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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