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의 블랙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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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한식 세계화의 블랙 코미디

by 경향글로벌칼럼 2009. 12. 25.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굳이 계몽하지 않아도, 한국 사람들이 변함없이 즐기는 우리 문화의 하나가 음식이다. ‘전통’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비로소 우리 문화를 지칭하는 것이 된 현실에서, 음식은 현재 우리가 즐기는 그것이, 이 땅에서 나서 진화해 온 바로 그것인, 매우 드물고 소중한 영역이다.

10년 전, 파리에는 20개 정도의 한식당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100개에 육박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 음식을 거의 모두 좋아한다. 아니 극찬한다. 처음 한국 음식을 접하는 프랑스인들과의 자리에선 언제나 열광과 감동을 예견할 수 있다. 한국 음식에 입문한 프랑스 사람들은, 이후 열렬한 한국 음식 홍보대사가 된다. 한국 음식이 이곳에서 점점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사람의 많은 손길 끝에서 탄생하는 음식 자체의 매력에서 출발한다.

얼마 전 파리에서 한식 세계화 교육이 이루어졌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주축이 되고,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한식세계화추진단이 파리에 온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반갑지만은 않았던 것은, 결식아동 25만명에 대한 내년도 지원예산 541억원이 삭감되는 대신 240억원이 편성되어 구설에 올랐던, 문제의 그 사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음식이 수 세기 동안 축적해온 그 고유의 저력으로 이제 비로소 세계 곳곳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 순간, “21세기 성장동력” 운운하며, 정부가 어쭙잖은 훈수를 두려는 자태가 미덥지 않아서다.



물론 정부가 한식 세계화에 관심을 갖는 사실 자체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들어설 자리를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빈 구석을 채우고, 모자란 부분을 거들어주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디저트가 약한 한식에서 디저트 메뉴를 개발한달지, 손이 많이 가는 조리과정을 단축하는 기구를 개발한달지, 전반적인 홍보를 한달지.

그러나 파리에서 나흘간 이루어진 교육에는 한식업 종사자보다 일반인이 더 많았고, 특히 20여명이 참석한 실습교육엔 3분의 2 이상이 일반 한국 주부들이었다. 실습도, 공지한 대로 궁중요리와 푸드스타일링 교육을 하는 대신 일반 요리학원에서 흔히 하는 평범한 요리 실습이 진행되었다. 농식품부는 우리 식재료로 교육을 해 한국 식재료 수출을 진작한다고 했으나 정작 한국산 식재료는 협찬사인 'ㄷ'참치캔뿐이었다.

더 애통한 사실은, 파리 한국문화원이 지난해 치러낸 한국요리축제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효과적인 행사였음에도, 정부는 그 행사의 금년 예산을 없애고 ‘김윤옥표’ 한식세계화 교육을 밀어넣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파리 한국문화원은 파리의 한국식당들에 대한 홍보는 물론 영화 <식객> 상영, 한식 상차림 전시, 요리실습, 시식회 등 다각도의 접근을 통해 한식에 대한 프랑스 언론의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프랑스인들에게 명백하게 한식을 각인시켰던 이 행사는 한국인들끼리 불어로 된 현수막을 걸어놓고 행한 조리 실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의 것이었다.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알리기 전에, 우리 아이들부터 굶기지 말고 먹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진행되는 한식 세계화 사업이, 결국 외국에 사는 한국 주부들에게 참치캔의 깊은 맛을 다시 한 번 알리는 블랙 코미디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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