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글 목록 (2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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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2036

[여적]‘투잡’ 퍼스트레이디 ‘퍼스트레이디’는 1877년 미국 19대 헤이스 대통령 취임식 보도에서 처음 등장했다. 한 기자가 대통령 부인을 지칭한 게 대중화되고, 그 후 국가원수의 부인을 이르는 말로 자리 잡았다. 퍼스트레이디가 꼭 해야 할 책무는 따로 정해진 게 없다. 대통령의 국내외 활동에 동행하고, 아동·복지·인권 관련 활동이나 친선대사 역할 등을 주로 해 왔다. 2013년 ‘아프리카 퍼스트레이디 회담’에서 만난 미셸 오바마와 로라 부시 여사는 “(퍼스트레이디가) 아마 세계 최고의 직업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 안팎의 대소사를 챙기는 남편들과 달리 열정을 가진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무보수지만 영향력과 보람은 결코 작지 않다는 뜻일 테다. 미국 역사상 첫 ‘유급 퍼스트레이디’가 나올지 눈길이 쏠린다. 조 바이.. 2020. 11. 9.
[경향의 눈]‘혼돈의 79일’ 고어의 길, 후버의 길, 트럼프의 길 ‘혼돈의 인터레그넘.’ 3일 치러진 미국 대선 이후 상황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듯하다. 인터레그넘(interregnum)은 ‘정권과 정권 사이’라는 의미다. 역사적으로는 왕이나 교황 등 최고지도자가 없던 기간을 일컫는다. 미국에서는 대선일과 대통령 취임일(1월20일)까지 기간을 말한다. 통상 권력이양이 이뤄진다. 보통 11주 정도 되는데, 이번엔 79일이다. 올해 대선일 밤 풍경은 여느 때와 사뭇 다르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모두 ‘승복’ 대신 ‘승리’를 주장했다. 심지어 트럼프는 우편투표가 사기라는 주장을 펴며 대법원 소송을 공언했다. 박빙의 승부 탓이긴 하지만 패배 시 대선 불복 가능성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승자 미확정에 따.. 2020. 11. 5.
[아침을 열며]트럼프 없는 세상 세상이 시끄럽다. 전대미문의 전염병과 보조라도 맞춘 것일까. 미국과 중국은 하루가 멀다 하고 으르렁댄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단어가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입에서 나왔고, 중국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행동”이라며 한국전쟁까지 소환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악의 제국’을 구소련에서 중국으로 대체한 007류의 영화가 다시 유행할 판이다. 미·중이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러시아는 구소련 영광을 재현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나. 난장판의 원흉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목된다. 그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펴면서 끊임없이 중국을 압박하고, 코로나19 책임을 덮기 위해 중국 책임론까지 부각시킨 결과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세계가 시끄러워졌다는 것이다. 죄가 많다. 이란 .. 2020. 11. 2.
[세상읽기]트럼프와 음모론 ‘어두운 공생’ 2016년 미국 대선 직후에 에드거 웰츠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수도 워싱턴까지 약 580㎞ 거리를 운전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동네 피자가게. 자동소총을 들고 가게로 들어간 그는 지하실을 찾으며 총을 발사했습니다. 갇혀 있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였죠. 좌파 지도자들이 유아 성학대를 일삼고 그 가게 지하에서 아이들을 거래한다는 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게에 아이들은커녕 지하실도 없었죠.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이후 웰츠는 잘못을 시인하고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았죠. 사라지기는커녕 이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음모론을 추종하는 이들은 ‘큐어넌(QAnon)’으로 불립니다. 정부 최고 기밀 취급 등급(Q)에서 착안한 이름을 쓰는 ‘큐’가 이들의 지도자.. 2020. 10. 30.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의 입구’가 될 수 없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다시 꺼냈다. 3번째 시도다. 그만큼 종전선언에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 모두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굳게 믿는 것 같다. 종전선언은 노무현 정부의 구상이었다. 2006년 11월 하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노무현·조지 부시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시발점이다. 회담 후 송민순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은 브리핑에서 대북 경제지원과 안전보장 외에 ‘평화체제 관련 상응조치’도 협의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국이 취할 수 있는 행동 리스트에 한국전쟁 종료선언도 포함돼 있다”고 했다. 종전선언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구상은 먼저 종전선언과 함께 협상.. 2020. 10. 16.
[특파원 칼럼]‘아카이빙 민주주의’의 단면 ‘미디어 정치’는 정치인들이 미디어를 통해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지지를 획득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미디어의 발달과 변화가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인터넷의 보편화는 정치인과 정치집단이 전통 미디어에 기대지 않고 시민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시민 입장에서도 인터넷은 정치인에게 지지·반대·압력을 보낼 수 있는 통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후보를 지명하고 공화당이 인준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아카이빙 민주주의 시대의 단면을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긴즈버그 전 대법관이 별세한 다음날인 지난달 19일 후임 대법관 후보자 지명을 예고했다. 그리고 며칠 뒤 에이미 코니 배럿 제7.. 2020. 10. 7.
[여적]긴즈버그의 유산 지난 18일 세상을 떠난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BG)는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법조인으로서의 긴즈버그의 삶은 ‘여성 차별과의 투쟁’ 그 자체다. 그의 최대 유산이기도 하다. 변호사 시절은 물론 대법관 시절, 그는 성차별적 법률을 폐지하며 여성권 신장에 앞장서왔다. 연방대법원 구성의 성비 불균형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비판했다. “나는 가끔 질문을 받는다. ‘연방대법원에 여성이 충분할 때가 언제인가.’ 내 대답은 ‘9명 있을 때’이다. 사람들은 놀란다. 하지만 9명 모두 남성이었을 때 아무도 그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유산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삶’이다. 긴즈버그는 ‘노토리어스(악명 높은) RBG’로도 불린다. 그가 대법원에서 “나는.. 2020. 9. 28.
[특파원 칼럼]가난 물려받은 ‘싼허청년’ 중국의 싼허(三和)청년들은 하루 일해서 번 돈으로 사흘간 논다. 싼허청년은 선전시 싼허인력시장에 모이는 20∼30대 농민공을 뜻한다. 인력시장에서 택배배달, 경비, 건설노동 등 일용직을 구한다. 매일 출근을 싫어하기 때문에 월급 주는 직장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싼허청년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중국의 사회 문제가 수십년간 얽히고설키면서 탄생한 ‘괴물’이라는 정체가 드러난다. 톈야라는 작가가 6개월간 싼허청년과 합숙하면서 쓴 에 따르면 이들은 착취와 압박, 차별 때문에 정규직을 갖기 싫어한다. 개혁·개방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농민공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와 차별은 심각했다.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면서 하루 12시간씩 공장에서 일했다. 공장이 제공한 숙소에서 사는 이들에게 출퇴근 경계도 모호했고 개인.. 2020. 9. 23.
[여적]상왕 아베 지난 16일 제99대 총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 자민당 총재가 아베 신조 전 총리(왼쪽에서 세번째)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도쿄|교도연합뉴스일본의 전통 인형극 분라쿠(文樂)를 공연하는데 ‘구로고(黑衣)’는 필요불가결한 배역이다. 검은 옷으로 전신을 가린 채 인형을 뒤에서 붙잡고 조종하거나 무대에 소도구를 옮기는 역할을 하는 이가 구로고다. 관객들은 극에 집중하기 위해 구로고를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구로고 덕분에 인형들은 인간 못지않은 섬세한 동작을 펼쳐보일 수 있다. 과거 일본 정치도 총리(인형)를 실세 정치인과 관료들이 뒤에서 조종하는 ‘구로고 정치’였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기 파벌을 움직이며 막후에서 실권을 휘두르는 상왕(上王)들이 드물지 않았다. 1972년부터 2년 반 총리.. 2020.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