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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578

‘대지의 여신’을 위로할 시간이 필요하다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지난 화요일, 햇빛 가득하던 파리 시내에 요란한 자동차들의 클랙슨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가보니, 양쪽 차선을 완전히 점거한 대형 트랙터들이 꼬리를 물고 긴 행진을 하고 있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 항의하는 프랑스 전역의 농민들이 1500대의 트랙터를 타고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대낮에 시가지에 진입한 탱크처럼 긴 트랙터 대열의 시각적 효과는 위협적이었다. “사르코지, 너의 정책은 빵점이야!” “브루니(사르코지 대통령 부인), 우린 사랑과 물만 먹고 살 순 없어.” “우리 농업을 지키는 데는 대가가 필요하다.” 슬로건들은 단호했지만, 시위는 유쾌했다. 시민들은 그들을 향해 박수치거나, 미소를 보내며, 그들의 싸움을 지지했다. 전통적 농업국인 프랑스, 식량자급이 가능했던 .. 2010. 4. 30.
이미지가 아닌 정책철학을!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지난 14일, 세느강변 도로를 축소하여 녹지공간을 확보하는 강변정비사업계획을 내놓았다. 2012년까지 세느강변 일부 도로를 차단, 축소하여 녹지와 휴식, 문화공간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신속한 소통이 생명인 대도시에서 적잖은 반발이 예상되지만, 쾌적한 도시 만들기에 방점을 찍은 그의 일관된 정책철학은 이 계획을 긍정적으로 읽게 한다. 선거 전, 동성애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으로 유명한 들라노에 시장은 2003년 파리 시장에 당선, 2008년 재선된 후 지금까지 친환경도시 만들기에 노력을 집중해왔다. 2020년까지 파리시는 자동차 수를 40%, 온실가스 배출량을 6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녹색’은 지구촌을 휩쓰는 최상의 정치슬로건이지만, 그.. 2010. 4. 16.
파리의 길인가, 베네치아의 길인가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여행 중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물의 도시라는 찬사를 누려온 이 매혹의 도시는, 화려한 오페라 공연이 끝나고 지우지 못한 흔적만 남은 무대처럼 폐허의 인상이 역력하다. 도시의 골목골목에는 여전히 에메랄드빛 물결이 출렁이고, 찬연한 과거를 연상케 하는 건축물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베네치아 상인들의 숨결에서는 불안을 머금은 공격성이 느껴지고, 산 마르코 광장을 뒤덮은 대형 향수 광고판은 베네치아의 슬픈 오늘을 대변해준다. 30년 사이, 베네치아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이제 6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생활기반으로서의 도시기능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베네치아 주민들의 이탈은 생존의 불안을 느낄 만큼의 잦은 침수가 그 1차적 원인이다. 지구온난화.. 2010. 4. 2.
생명은 양지에서 싹튼다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최근 한국에 낙태 논란이 있다기에, 옛날에 결론난 얘기가 왜 새삼 거론되나 하다가, 낙태 금지가 정부의 저출산대책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 기겁했다. 정부의 이런 발상은, 자신은 술 취해 매일 밤늦게 들어오면서 월급봉투만 던져주면, 아내는 일도 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시부모한테 효도도 대신해주겠거니 기대하는 한국 남편들 모습과 닮았다. 가열되는 경쟁 교육, 살인적 등록금, 자살하는 아이들, 비정규직 900만, 세계 1위 성산업국…. 이 지경에서, 낙태만 금지하면 출산율은 상승한다? 지독한 가부장적 사고만이 이런 전근대적 발상을 감히 정책이라 부를 수 있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가 연 외신기자 간담회의 ‘룸살롱 사건’도 이 같은 정권의 무감각을 잘 대변해준다. 한 외신기자가 “한국 .. 2010. 3. 19.
당신의 행복을 찾으셨어요?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과일가게에 들어가 과일을 골라 계산대에 놓는데, 가게 직원이 내게 묻는다. “당신의 행복을 찾으셨어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내 인생에서 행복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순간 헤아려보았다. 심각해진 내 얼굴을 보며, “당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골랐느냐”는 말이었을 뿐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이런 표현이 있다는 걸 모른다면, 이건 굉장히 심오한 질문이에요” 했더니, 그는 바로 응수한다. “그렇죠. 언제나 우린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예술을 통해서나, 사랑을 통해서나, 자신이 가치를 두는 어떤 일을 통해서. 결국 모두 뭔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건데, 사랑할 땐 다음날 죽어도 후회 없도록 사랑해야죠. 삶은 늘 죽음 옆에 있는 거니까, 내일 삶이.. 2010. 3. 5.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오래 살자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파리의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 외벽에 설치됐던 작품 하나가, 설치된 지 몇 시간도 안돼 철거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문제의 작품은 과거 프랑스에서 수학한 바 있는 중국 작가 고시우란의 것으로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라는 내용의 글자를 검은 배너에 흰 글씨로 담고 있다. 누가 보아도, 2007년 사르코지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사용한 슬로건 ‘많이 일하고, 많이 벌자’를 비튼 문구다. 그대로 걸려 있었다면 ‘그렇군, 재밌군’ 하고 넘어갔을 설치작품이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철거’되자, 이 나라의 어지간한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팔짝 뛸 만큼 부끄러운 학교 당국의 처사가 삽시간에 인터넷 공간을 타고 프랑스 전역에 번졌다. 하필 중국 작가가 그 작품을 만들었다는.. 2010. 2. 19.
외규장각 도서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외규장각 도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문화연대가 제기한 도서반환 소송에 대해 프랑스 행정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화연대는 즉각 항소를 결정하고 10만유로에 달하는 항소비용 마련을 위해 1만인 시민지원단을 모집하고 있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약탈자, 제국주의자, 뻔뻔하고 오만한 프랑스를 신나게 욕해주기를 되풀이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법도 있고 도덕·상식 따위들의 룰이 있건만, 결국 가장 자주 우리 삶의 질서로 적용되는 것은 힘의 논리라는 사실을 매번 깨달으며 우린 긴 한숨을 내쉰다. 사람들은 종종 궁금해한다. 우리가 이렇게 분통 터뜨리고 있을 때, 프랑스 시민들은 과연 이 문제를.. 2010. 2. 5.
자유를 받아들이는 훈련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은퇴 직후 1년간, 평균 10년이 젊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얘기다. 아침마다, 몸이 아파도, 폭설로 길이 덮여도, 이불을 걷어차고 정해진 시간까지 일터로 향해야 하는 노동의 ‘의무’를 벗어던진다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늦잠을 자도, 가고 싶은 곳에 가도,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해도 되는 ‘자유’를 획득한다는 것은.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소식을 접하며 살짝 웃었다. 12년 전,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일의 중압감을 벗어던지고, 먼 나라로 훌훌 떠나왔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파리에 와서 체류증을 갱신하느라 찍은 증명사진을 한국에서의 ‘직딩’ 시절 증명사진과 비교해 보니, 전자가 10년쯤 젊어 보였던 것이다. 스물아홉에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를 배우며 새로운 삶을 일.. 2010. 1. 22.
정신적 폭력은 범죄다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올해부터 프랑스에선 커플 간에 행해진 정신적 폭력이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이들에 의한 정신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고발한 책 (마리프랑스 이리고옌)이 출간되어, 프랑스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지 10년 만의 일이다. 이 책 이후 프랑스 사회는 ‘정신적 폭력’을 일상에 만연한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게 되었고, 정부는 비로소 이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법적인 처벌을 공식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가까운 사이, 특히 부부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은밀하게 행해지는 모욕, 무시, 위협, 멸시…. 결국 자존감을 완전히 파괴하고, 정신적인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일상적 괴롭힘의 피해자는 흔히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가정은 .. 2010.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