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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은 오는 8월 실시 예정이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유예하기로 했다. 유예기간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훈련이 재개될 것 같지 않다. 북·미 정상회담 후속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 북한은 연합군사훈련을 대표적인 대북 적대시정책으로 간주한다. 지난달 한·미 공군 연합공중훈련을 문제 삼아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 예정일 새벽에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도 그런 인식의 결과였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연합훈련 유예 조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 조치의 진전을 대내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할 것이다. 비핵화가 체제 보장에 기여하는 것을 실증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세번째)이 1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후 기념촬영하는 모습을 중국 관영 CCTV가 공개했다. 리설주 여사(왼쪽)와 펑리위안 여사(오른쪽)도 함께 촬영했다. 연합뉴스

 

과거에도 연합훈련 중단은 일시적이나마 한반도 평화를 증진하는 역할을 해왔다. 1992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때 북한은 핵물질을 자진신고했고, 지난 3월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다. 상호신뢰를 쌓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현 시점에서 군사훈련 중단이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북한에 상응하는 조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기를 거론했다고 전했다.

 

한·미가 북·미 정상회담 후속 협상을 하기 전에 훈련 유예를 결정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 전 북한이 실시한 핵·미사일 실험중단, 핵실험장 폐기 등 선제 조치에 호응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이 이런 조치들을 주고받는 것은 상호신뢰를 쌓고 정상회담 합의의 순조로운 이행을 담보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이른 시일 내 훈련중단에 값하는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북한은 한·미 일각에서 비핵화 조치가 충분하지 않은데도 군사훈련을 중단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은 길고 험난한 길인 만큼 이해당사자들의 지원과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도 주목을 끈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정상적인 외교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석달 새 3번이나 방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얼어붙은 북·중관계 복원의 필요성이나 한반도 급변정세를 감안하면 크게 이상할 게 없다. 다만 김 위원장은 미국이 자신의 잦은 중국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외면하면 안된다. 이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김 위원장의 방중 모두 비핵화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관련 당사국 모두 노력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KHross

시리아 정부(시리아·러시아·인도·중국 언론 표현) 혹은 아사드 정권(서구 언론 표현)은 당분간 건재할 것으로 보인다. 아사드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는 그가 시리아의 독립과 단결, 세속국가 그리고 모든 종교의 공평한 대우를 상징한다. 지지자들은 그들이 ‘외국의 침공’이라 간주하는 행위에 대해 시리아군이 정당방위를 행하고 있다고 믿는다.

 

2011년 시리아의 국방비는 중동 전체의 1%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시리아 정부가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적대세력에 맞서 버티는 이유는 수니파, 시아파, 기독교와 드루즈파의 초종파적 지지 때문이다. 시리아의 소수종파들과 세속적인 수니파들은 아사드 정부가 패하면 시리아를 떠나야 한다고 우려하기 때문에 정부를 강력히 지지한다.

 

서울 종로구 사진전문갤러리 류가헌에서 19일 개막한 경향신문·월드비전 공동기획 난민 아동 사진전 ‘아이 엠(I AM), 나를 희망한다’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감상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한편, 시리아의 반군 세력은 초창기부터 강력한 이슬람주의 및 극단주의 성향을 띠었다. 그들은 통합된 적이 없었고, 시리아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걸프 왕정, 터키, 유럽연합 일부 국가(동유럽 포함)들로부터 무기, 자금 등의 측면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

 

결국, 시리아 정부와 군의 붕괴를 막기 위해 러시아가 2015년 9월부터 개입했다. 이 ‘개입 저지를 위한 개입’은 중동을 오랫동안 연구한 이들에게는 놀랄 일이 아니다. 시리아와 러시아(당시 소련)는 1950년대 중반부터 동맹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리아-러시아의 밀접한 관계가 60년도 더 됐고, 심지어 시리아 정부보다도 오래된 것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 전쟁 당시 점령한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지키기 위해 시리아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 고원엔 막대한 석유 및 수자원이 있으며, 국제법상 시리아 영토다.

 

2018년 2월, 쿠르드족이 다수를 이루는 시리아 서북지역을 터키가 침공했다. 그 전에 미국도 2015년 10월부터 시리아를 침공했고 쿠르드족이 다수를 이루는 시리아의 동북지역(유프라테스강 동쪽)에 군사 기지들을 설치했다. 이 지역에 시리아의 석유와 가스 자원의 90%가 매장돼 있다.

 

현재 미군이 쿠르드족 민병대와 공조하고 있어 미국과 터키 간에 쿠르드족을 둘러싼 갈등이 존재한다. 터키는 미군이 이끄는 쿠르드족 민병대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쓰일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사실, 시리아를 침공한 국가 모두 각각의 이익 즉, 단일국가 시리아를 해체하기 위해 시리아 내전을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쿠르드족은 국가를 설립하지 못한 중동 최대 민족으로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쿠르드족은 중동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이나 소련에 의해 여러 번 이용당했다. 중동 정치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패턴은 ‘한 국가의 쿠르드족이 이웃 나라의 전략적 지원을 받는’ 것이다. 이라크 쿠르드족은 이란의 지원을 받고, 이란 쿠르드족은 이라크의 지원을, 터키 쿠르드족은 시리아의 지원을 받는 식이다. 이는 쿠르드족 자치나 국가수립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이웃의 공격에 대비하는 ‘보험 전략’이다. 현재 진행되는 미국의 시리아 쿠르드족(YPG) 지원은 이 기나긴 역사의 마지막 장이다. 미국은 시리아의 미래에 대한 협상에서 시리아 쿠르드족을 협상카드로 사용하려 한다. 한편, 미국의 중요한 동맹인 터키는 자국에 쿠르드족이 많다는 이유로 쿠르드족 민족주의에 반대하고 있어 양국이 시리아 쿠르드족을 희생하는 방향으로 합의할 가능성도 있다.

 

나는 미국이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넓히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사드 지지자와 이슬람주의 반군 모두 친미성향을 보이지 않는다. 사실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지역 강국으로서의 실질적 독립성이 없는 ‘약한 시리아’를 바랄 뿐이다. 미국은 쿠르드족의 ‘보호자’가 되기 위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쿠르드족 영토를 떼어내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국경을 바꾸려는 시도는 지역 내에서 더 많은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러시아의 영향력과 관련해서는, 러시아는 중동에서 행위자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지 지역 패권을 지향하고 있지 않으며, 그럴 수 있는 요건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와 반대세력 대표자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러시아의 계획(아스타나 회의)이 시리아 사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다. 외부 개입으로 인한 전쟁의 확대 등 이 외의 시나리오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지금이 시리아 사태를 종식시키고 외교적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적기다. 러시아가 이 부분에서 노력한 것을 인정해야 하며 다른 나라들도 힘을 보태야 한다.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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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특히 한국에서 한반도의 미래와 장기적 평화 전망에 대한 전례 없는 낙관주의를 촉발했다. 6개월 전에 광범위하게 퍼졌던 전쟁 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고, 남북과 북·미 간 적대관계 청산에 대한 희망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회담,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상 첫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생각과 평정심이 필요하다.

 

세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북한과 바깥 세계 간의 더 큰 변화를 막을 수 있다. 첫째, 북한이 정의하는 비핵화와 한국·미국의 비핵화 사이에는 엄청난 의미의 차이가 있다. 둘째, 관련 국가들의 기대와 (정의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에 대한 (시간표는 말할 것도 없고) 합의된 절차나 로드맵이 없다. 셋째, 신뢰할 수 있고, 검증 가능한 핵합의의 필요조건은 정보 공개와 북한에 대한 접근, 국가 주권에 대한 양보를 포함하며 이는 북한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경제클럽’ 오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디트로이트 _ AP연합뉴스

 

비핵화 정의의 간격은 단순한 의미론의 문제 이상으로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주장의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은 채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이해하고 있는 내용은 같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왔고, 그 의미를 정의하는 일은 미국과 북한에 맡겨두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이 무기 프로그램들을 종결시키는 데 동의했다고 믿지 않는다.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 있는 핵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북한은 모든 협상은 군축에 관한 것이지 비핵화에 관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서 이 근본적인 문제를 애매하게 만들고 무시하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는 남북 간 의제 중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판문점선언의 끝부분에 배치됐고 거의 지나가듯이 언급됐다.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핵 문제 취급은 더 걱정스러웠다.

 

성명은 애매하고 희망적인 목표로 후퇴했다. 2005년 9·19 6자회담 공동성명이나 기존 북·미 간 핵 합의보다 훨씬 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이 담기지 못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이 선언의 실제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보다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고, 김 위원장은 어떤 결정적이고 명확한 언어에도 동의하는 것을 거부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상회담 선언에서 이 이슈에 대해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면, 북한의 핵무기를 소유하려는 결심과 미국이나 한국의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 사이의 양립불가능성이 드러났을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에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의지를 전달해왔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또한 미국은 앞으로 2년 반 안에 주요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시간표와 로드맵 관련 문제들이 명확해지고, 구속력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을 가속화하고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가오는 몇 주와 몇 개월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이런 큰 목표들을 진전시켰는지,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와 약속이 충분한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위험성도 존재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와는 별개의 정치적 필요와 목표들이 있고 그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세계와의 끊임없는 적개심을 수정하지 않고도 자신의 의제들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란 점이다. 두 대통령들은 김 위원장에게 북한이 번영하고 두 나라와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했다. 미국은 북한에 미국의 비적대적인 의도를 확신시키기 위해 당면한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미래에는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철수도 가능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힌트를 줬다. 지난 65년간 전쟁을 억지해 온 (한·미) 안보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는 조치들도 암시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 있어 전례 없는 돌파구를 찾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정상은 김 위원장이 핵 없는 미래를 위한 열망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두 정상이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보증 없는 가정을 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

 

<조너선 폴락 |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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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변석개(朝變夕改)도 이 정도면 ‘갑’이다. 보는 사람이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최근 북한에 ‘러브콜’을 연발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얘기다.

 

아베 총리는 지난 16일 “북한과 신뢰 관계를 증진해 가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큰 결단을 기대한다”며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깨고 전진하고 싶다”고 했다. 18일에도 “납치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내가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에게는 북·미 정상회담을 실현한 지도력이 있다”고도 했다. ‘대북 강경’ 일변도였던 그 아베 총리가 맞나 싶다. 그는 불과 2개월 전까지만 해도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 “최대한의 압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도쿄에서 북.미 정상 회담 관련 기자 회견을 갖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런데 지난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태도를 180도 바꿨다. 아베 총리가 “도널드”라고 부르면서, “100% 일치”를 과시했던 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계기를 줬다.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유화’ 자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 ‘도널드’가 하는데 ‘신조’가 안 한다? 상상하기 어렵다.

 

‘절친’ 도널드와 이심전심인 만큼 향후 전개 과정을 알아챘을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아베 총리까지 정상회담을 하려는 건 비핵화에 진전이 있다고 보는 거 아니겠냐”고 했다.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이유는 더 있다. ‘재팬 패싱(배제)’ 우려를 씻고 현 국면에 올라타겠다는 셈법이다. ‘납치의 아베’로 지금 자리까지 오른 아베 총리로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자칫 정치생명까지 위험하다고 직감했을 것이다. 각종 스캔들로 떨어진 지지율 부양과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3연임에는 북·일 정상회담이 ‘믿는 구석’일 것이다. 실체 없는 ‘대북 교섭설’이 흘러나오고, ‘다음은 내 차례’ ‘나는 속지 않는다’ 같은 낯뜨거운 제목들이 친(親)아베 언론에 등장하는 게 우연일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북·일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걸 말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찝찝함은 가시지 않는다.

 

아베 정권에게 ‘북한 위협론’은 주요한 자산이었다. 지난해 10월 갑작스러운 중의원 해산의 명분도 북한 핵·미사일 위기로 인한 ‘국난’ 돌파였다. 그런 북한이 이번에 정반대에서 아베 정권의 ‘동아줄’이 된 건 아이러니하다. 북한의 ‘대화 공세’를 “미소 외교” “시간 벌기”라고 비난하더니 지금은 “신뢰관계 증진”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깨자”고 한다.

 

일본이 북·일 정상회담의 목표로 삼고 있는 납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는 그간 압력이 필수라는 자세로 일관해왔다. 스스로 선택지를 좁혀온 셈이다.

 

더욱이 아베 총리가 북·일 국교 정상화의 기초로 삼자고 하는 2002년 북·일 평양선언은 ‘불행한 과거의 청산’과 ‘현안사항의 해결’을 병기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와 납치 문제의 동시 청산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후자만 강조됐고, 전자는 사실상 무시됐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아베 총리가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한 피해와 고통에 대한 반성 위에 새로운 북·일관계를 만들어갈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다.

 

한 일본 언론인은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일본 보수우익 세력들이 말 그대로 ‘멘붕(정신 붕괴)’이라고 했다. 지난 70년간 한반도 분단 체제와 미국과의 군사동맹에 의존해온 이들에게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전면에 내세운 공동선언은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비단 아베 총리나 일본 보수우익세력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동북아시아가 새로운 평화체제로 가는 것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지 말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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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공동성명 서명직전 “세상은 이제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겁니다”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이었다. 중대 변화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지만 곧 모습이 드러날 터이니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사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포기와 그에 걸맞은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기대했던 투자자들 시각에서 보면 북·미 공동성명은 흥미로운 결과물은 아니었다. 핵만 포기하면 북한은 부자나라가 될 수 있다고 말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트럼프가 회담말미에 핵포기 시 북한의 미래 영상을 보여주면서 “북한은 훌륭한 해안선을 갖고 있다. 훌륭한 호텔을 지을 수 있다”고 조언하고, 김 위원장도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게 위안거리이다. 이쯤 되면 북한 핵포기와 경제발전은 암묵의 동의어다.

 

과연 북한은 부자나라가 될 수 있을까. 된다면 언제쯤 가능할까. 북한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이다. 이런 북한에 북·미관계 정상화와 그에 따른 경제지원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명약관화하다. 북한의 개방모델을 놓고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모델이 거론되지만 결국은 국가개입과 당 관리하에서 성장가능한 모델을 선택할 것도 불문가지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서명한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에 손을 올린 채 걸어가고 있다. 싱가포르 _ 로이터연합뉴스

 

따지고 보면 중국과 베트남의 성장과실은 30~40년에 걸친 개혁·개방의 결과물이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뒤 1992년 남순강화를 거치면서 저임금에 매력을 느낀 외자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고도성장이 시작됐다. 1986년 도이모이정책을 시작한 베트남도 1994년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거쳐 한국·일본의 주력제품 생산기지가 옮겨오면서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외부와의 단절, 사회주의 잔재가 남은 상황에서 시작한 중국이나 베트남의 개혁작업에 비하면 북한의 여건은 훨씬 유리하다. 김 위원장은 집권 뒤 그간 억눌러왔던 시장을 암묵적으로 허용했다. 시장경제 예비군인 장마당은 이미 400개를 넘어섰다. 4개였던 경제특구도 20개 이상으로 늘었다. 게다가 북한 곁에는 세계 10위권 한국 경제가 존재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쟁쟁한 글로벌 자본들도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비핵화만 이뤄지면 개혁·개방에 가속도가 붙을 것은 명확하다. 김 위원장도 지난 4월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새 노선으로 채택하면서 혈통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제 재건으로 민생이 개선되면 권력기반이 강화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북한의 경제상황은 최빈국 수준이다. 2016년 현재 1인당 소득은 150만원이다. 3500만원인 한국의 25분의 1 규모이다. 교역규모는 9016억달러 대 65억달러, 외국인 직접투자는 108억달러 대 0.9억달러이다. 경제 전체를 보면 한국의 50분의 1 수준이라는 게 정설이다. 북한의 개혁 방향을 놓고 말이 많지만 우선적으로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1차 산업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외자가 들어오면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특구 개발에 속도가 날 것이다.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그런 다음에는 소비혁명이 기다린다. 제대로만 진행되면 10년이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하다. 북한의 기회는 한국의 기회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파트너이다. 한국의 자본과 산업화 경험이 북한의 인력, 자원 등과 결합하면 획기적 도약이 일어날 수 있다. 한발 나아가 남북 단일시장이 형성되면 더 큰 것을 누릴 수 있다.

 

70년간 적대관계였던 북·미 정상이 마주 앉은 것은 역사적 진전임이 분명하다. 과거 핵을 포기하면 대가를 준다는 방식에서 벗어나 적대관계 해소를 먼저 다룬 뒤 미국이 먼저 양보하면서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는 방식은 기존 문법과는 다른 역발상이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이미 비가역적 변화는 시작된 셈이다. 경제분야라고 역발상을 못할 게 없다. 경제자위론은 핵자위론 못지않다. 경제가 번영하면 상호 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김 위원장이 덩샤오핑처럼 개혁개방의 전도사가 되고, 원산이 상하이가 되면 자연스레 전쟁은 멀어진다. 등산 애호가인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뒤 백두산·개마고원 트레킹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부동산 사업자인 트럼트는 평양 대동강변에 세워질지 모를 트럼프타워에서 퇴임 뒤 꽃놀이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강릉의 안목해변처럼 원산 해변가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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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과거사를 미화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달리 부인 아키에 여사는 ‘친한파’였다. 한류 사랑이 유별나 배우 박용하씨가 요절했을 때 조화를 보내기도 했다. 아베 정부의 원전 확대에 반대한다는 글을 여러 차례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로 인해 부부싸움까지 했다. 이른바 ‘가정 내 야당’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일본 우익으로부터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그래서일까. 2015년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합의를 한 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한국인들은 배신당했다며 가슴을 쳤다.

 

“아이들에게 손 떼라” 미국 텍사스 토닐로에서 17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불법 입국자 자녀에 대한 격리 수용 정책에 항의하며 “아이들에게서 손을 떼라”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토닐로 _ 로이터연합뉴스

 

역대 대통령 전기를 보면 부인들은 충돌하는 요구에 직면한다. 남편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직언해야 한다거나 정치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전기에서는 부인이 대체로 훌륭한 가정 내 야당 역할을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에 대해 “내 옆에 지독한 야당 총재께서 앉아계시니 조심들 합시다”라는 농담을 자주 했다. 실제로 육 여사는 1963년 박 전 대통령이 군정연장을 시도하자 주미대사에게 미국이 반대하도록 설득하라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가장 엄격한 비판자로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대통령의 건강을 지나치게 챙기면서 심기를 거스르는 정보를 차단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어쩌면 ‘오만한 안방권력’과 ‘현명한 조언자’는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른다.

 

미국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 AFP 연합뉴스

 

불법 입국한 부모와 자녀를 따로 수용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무관용 정책’에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반대했다. 그녀가 “국가는 가슴으로 통치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를 압박하자 워싱턴 정가는 놀란 표정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전적으로 인권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녀는 슬로베니아 이민자이기도 하다. 지난 3월에는 사이버 괴롭힘을 악으로 규정하고 백악관 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트위터를 계속해온 남편에 대한 명백한 ‘반란’이다. 그녀는 회의에서 “옳다고 알고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밀랍인형’으로 살아가지 않을 것을 선언한 셈이다. 기록에 따르면 부인의 반대는 관철된 적이 많지 않다. ‘멜라니아의 반란’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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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양대축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보복전으로 치닫고 있다. 아르헨티나·터키·브라질 등 신흥국의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데다 세계 1, 2위 경제대국이 치고받는 무역전쟁을 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지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관세를 다음달 6일부터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상품수지 적자 3750억달러의 약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관세 부과 대상은 1102개 품목이다. 중국이 이른바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통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항공우주·정보통신·산업로봇·신소재·무인자동차 등 첨단기술 제품들이 대거 포함됐다. 글로벌 기술패권을 노리는 중국의 ‘기술 굴기(堀起)’를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중국도 즉각 보복관세 조치를 취하면서 반격했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16일 “5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659개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농산품·자동차·수산물 등을 포함한 340억달러 규모의 545개 품목에 대해선 다음달 6일부터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똑같은 규모의 보복관세 조치로 맞대응한 것이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어기는 미국에 적극적인 반격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이 보복관세를 주고받으면서 통상장벽이 높아지면, 교역을 위축시켜 세계 경제성장률을 1%포인트 넘게 떨어뜨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장 15일 국제 원자재시장에서 구리·알루미늄·백금 등 산업용 금속의 선물거래 가격이 2% 넘게 하락하고,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도 급락세를 보였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가하는 무역전쟁에서 승자는 없고, 모두 패자로 남게 될 것”이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한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의 80%는 중간재다. 중국은 한국산 부품으로 완제품을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이 적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미국의 25% 고율관세 부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10% 줄어들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도 연간 30조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글로벌 무역전쟁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치밀한 대응전략을 세워야 한다.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양자·다자간 통상외교도 강화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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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이르면 이번주부터 후속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관측된다. 북·미 양국은 정상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북한 고위급 관리가 주도하는 후속 협상을 “가능한 한 가장 이른 시일에 개시하기로 약속한다”고 공동성명에 명기한 바 있다. 양측은 정상회담 직후에 주목할 만한 ‘초기 조치’를 공개했다.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폐쇄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 입장에서 합의 이행의 초기 조치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의 초기 조치에 해당한다.

 

한·미 양국이 군사훈련 중단 계획을 발표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북한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대형 미사일 엔진 실험 시설 폐기 조치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동시 행동 원칙에 입각해 초기 조치에 나서는 것은 상호 신뢰를 쌓는 바람직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한의 다음 단계 조치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보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일부 해외반출 같은 대담한 초기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올 들어 핵·미사일 실험 중단 선언, 억류 미국인 3명 석방,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의 선제조치를 내놨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식의 상호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로 움직여온 셈이다. 북·미 공동성명이 주고받을 목록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이런 북한의 포괄적인 의지를 미국이 신뢰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북·미 간의 새로운 관계 수립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바쁘다. 정상회담은 트럼프가 말한 대로 ‘과정의 시작’이었다. 초기 조치를 얼마나 신속하고 순조롭게 취해 나가느냐가 과정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할 정도로 북·미관계는 탄력을 받고 있다. 이 동력을 살려 과감한 초기 조치 이행으로 북·미관계를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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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과 선의의 협상을 진행하는 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훈련을 중단할 경우 한·미동맹 전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북한이 도발로 간주하는 연합훈련 중단이 진작에 이뤄졌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13일에는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까지 우려를 표명하는 등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연합훈련 중단 비판론은 비핵화 협상은 물론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소모적이다. 비핵화 협상의 동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조기에 진화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점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조치가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협상 상대를 자극하는 군사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상식이다. 북한이 6개월째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있는 데 대한 상응조치로도 필요하다. 북한은 이외에도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와 억류 미국 시민 3명 석방 등 여러 차례 ‘선의’를 표시했지만 미국은 한 번도 상응조치를 하지 않았다.

 

훈련 중단 선례도 적지 않다. 한·미가 1993년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한 뒤 남북대화 봇물이 터졌고, 지난 3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올림픽 이후로 연기했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훈련을 연기한다고 해서 안보에 구멍이 뚫리거나 군 전력이 약화됐다는 근거는 없었다. 오히려 남북대화와 교류가 활성화되는 등 안보가 강화되는 효과를 거뒀다. 사실 한·미 연합훈련이 연중 실시되는 점을 감안하면 일시 중단으로 인한 전력 약화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에 연합훈련을 중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 안보나 전력 약화가 의심된다면 훈련을 중단하지 않는 방안도 가능하다. 일시 유예하거나 축소하는 것이다. 통상적인 훈련은 진행하되 전략자산을 동원하지 않는 방안도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핵공격이 전제된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금지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훈련 중단 방법이 아니라 비핵화를 향한 의지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군사적 신뢰구축이 필수적이다. 북·미 간 군사적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북한이 체제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비핵화를 위한 과정에 적극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도 과도적 안보 제공으로 핵폐기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므로 훈련 중단은 종전선언 효과도 거둘 수 있는 방안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14일 비핵화 목표 시한을 2년으로 잡은 것에 대해 비현실적이란 비판이 나오지만 군사적 신뢰가 있다면 이 역시 못할 것 없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남북 및 북·미 대결의 원인이지만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과 미국은 전쟁 억제와 대비태세 강화를 위해 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를 정권 안전과 체제 유지에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해왔다. 상대의 군사적 행동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대비태세를 강화하면서 군사적 긴장과 갈등 수위를 고조시켜온 것이다. 어느 한쪽이 도발적 행동을 멈추지 않는 한 이같이 위험한 질주를 막을 수 없다. 북한의 도발적 군사 행태뿐 아니라 핵 및 미사일 개발도 이런 모순적 구조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왜 군사훈련 문제가 첫 단추가 되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한반도 평화라는 점이다. 비핵화는 평화 정착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역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이다.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는 8월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중단할 방침이라고 CNN이 보도했다. 트럼프의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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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가 만들어졌다. 전쟁과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고 공존과 평화의 시대로 향하는 문이 열린 날이다. 센토사섬 카펠라호텔 현관 양쪽 회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중앙으로 걸어 나와 12.5초간 나눈 악수는 70년 묵은 적대감과 지난 수년간 임계점에 다다랐던 전쟁위기가 극적 반전을 맞는 순간이었다. 4월27일이 분단과 전쟁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이 평화로운 한반도를 여는 상징이 되었던 것처럼, 한때는 ‘죽음 앞의 섬’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해적과 폭력, 전쟁과 학살의 어두운 역사가 있던 센토사섬은 평화의 섬으로 재탄생할 기회를 얻었다.

 

오랜 세월이 만든 좌절감과 냉소의 관성이었을까? 70년 적대관계를 뒤로하고 평화를 향해 협력하겠다는 공동성명문에 서명까지 했음에도 전율의 시간을 맞은 지 불과 반나절 만에 성과에 대한 평가절하가 시작됐다. ‘만화 같다’는 한 미국 언론의 표현이나 ‘공상과학영화의 판타지 장면 같다’는 김 위원장의 표현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두 정상은 미국 내부를 점령하다시피 한 회의론자와 비판자들의 반발을 의식하기보다는 상호신뢰 확보가 우선임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전형성과 경로종속성을 탈피하고 새로운 시대로 가는 중요한 추동력을 공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개된 공동성명문 내용도 평가절하받을 이유는 없다. 세계역사상 정상 간 공동성명들이 그랬듯이 디테일보다는 원칙과 약속 위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에서 모호성만 가지고 비판하기 어렵다. 제작 김정은, 감독 문재인, 영감(inspired by) 트럼프.

 

물론 구체적 실행방안과 타임프레임이 담겼으면 더 좋았겠지만 과욕일 수 있고, 성명문에 담지 않은 합의가 있을 상당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정상회담 전날 심야의 전격 실무회담은 합의를 위한 막판 줄다리기보다는 그동안 미국이 요구했던 비핵화의 과감한 초기 조치, 소위 ‘프런트 로딩’에 대한 김 위원장의 결단을 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폼페이오가 정상회담 하루 전에 백악관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결과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것이나, 트럼프가 회담 당일 새벽에 증오자와 패배자들을 비난하며 성공을 확언했던 것을 통해 추정해볼 수 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미국의 ‘CVID 근본주의’ 문제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선언 모두 완전한 비핵화, 즉 CD라고 명문화하고 있음에도 미국에서는 ‘V’와 ‘I’가 빠졌다고 비핵화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실현 가능한 수준에서의 CVID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완전한 비핵화를 명기한 것은 현실적 최대치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북·미 성명에서는 판문점선언보다 강한 표현인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완전한 비핵화’라고 적시한 점은 진전이다.

 

아무튼 ‘I’는 북한의 반발이 타당하므로 빠지는 것이 맞다. 주권국가로서 상황이나 조건이 변해도 입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행동에 따라 체제안전 보장 약속을 변경할 수 있듯이, 북한도 미국이 약속을 깰 경우 바꿀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공평하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맺은 위안부 합의에서 주장하는 비가역성의 부당성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또 검증을 말하는 ‘V’는 필요한 과정이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한 후에는 효용성이 반감됐다. 즉 북한이 핵을 가지기 전까지는 검증만으로도 비핵화가 가능할 수 있었으나, 핵을 완성한 후에는 검증만으로 확인이 불가능하고 북한의 자발적 신고와 폐기에 대한 신뢰가 동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구에 매달리지 말고,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보다 역진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것은 이번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의 역할이 부쩍 커졌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의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한다는 표현도 그렇지만 회담 전후 내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두 정상의 의지가 읽혔다.

 

북·미 양국의 불신구조에서 싹트는 신뢰의 배아(胚芽)는 한국의 보증을 받고 싶어 한다. 북·미 회담 이후 남·북·미 리더는 확실히 한배를 탔다.

 

트럼프의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에 매우 이례적으로 비디오클립이 상영되었는데 북한에 전쟁과 평화 사이의 선택을 촉구하는 영상이었다. 끝난 후 엔딩크레디트를 올린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 같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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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대해 비판론이 제기된다. 공동성명에 비핵화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일방적으로 김정은에 놀아난 실패한 회담”이라고 혹평했다. 트럼프의 한·미 군사훈련 중단 방침에 대한 안보 우려도 나온다.

 

공동성명이 기대치를 밑도는 것은 맞다. 전문의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 재확인’과 3번째 합의 사항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확약’은 포괄적이다. 미국이 강조해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뒷받침한다고 보기 어렵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 업무오찬 직후 싱가포르 카펠라호텔 주변을 함께 산책하고 있다. 싱가포르_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회담은 여타 정상회담과 성격이 다르다. 70년간 적대해온 두 나라의 정상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한 것만도 평가받을 일이다. 공동성명에 못 박지 않았지만 두 정상이 후속조치를 이행하기로 약속한 것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엔진 실험장을 폐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도 미국의 신뢰 구축 조치에 상응하는 “선의의 조치”를 취해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아직 회담의 성패를 단정지을 때가 아닌 것이다.

 

북·미가 비핵화에 대해 단순한 핵폐기를 넘어 관계정상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북핵 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므로 이를 해소하지 않고 핵만 폐기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적대관계가 계속되는 한 언제든 핵개발의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두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안전 및 북·미 수교를 추구하기로 한 것은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꾀한다는 의미가 있다.

 

북·미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평화를 위한 여정에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더구나 북한은 벌써 6개월째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해오고 있다. 한·미도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연합군사훈련을 일시 유예하지 않았는가. 안보 측면에서만 볼 일이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을 넘어 비난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모처럼 마련된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 구축 작업의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람들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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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직후 세계 각국에 불공정 무역을 문제 삼는 협박장을 날렸다. 협조하지 않으면 국경세를 내라거나 무역협정을 폐기하겠다는 으름장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알리바바는 100만개의 일자리를, 도요타는 100억달러 투자를, 한국은 748억달러어치만큼 투자하거나 미국산 제품 구매를 약속했다. 지난 5월24일 트럼프는 북한 관리들의 과격한 발언을 문제 삼아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했다. 하지만 반나절도 안돼 북한이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하자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음을 내비쳤고, 결국 회담 개최를 확약했다. 해명이 걸작이다. “누구나 거래를 한다. 확실해 보이던 거래가 깨지고,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거래가 성사되기도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첫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싱가포르 _ 로이터연합뉴스

 

12일의 회담에서 트럼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여준 영상이 화제다. 4분 길이의 영상은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미군 전투기 출격 및 미사일 발사 광경, 그리고 에너지 시설, 도로, 대형 댐 등이 담겨 있다. 내레이션에는 ‘역사’가 7차례, ‘선택’이 5차례, ‘기회’ ‘번영’ ‘미래’가 각각 3차례 반복된다. 그러고는 “결과는 두 가지. 하나는 후퇴하는 것, 아니면 전진하는 것. 단 한 번의 기회가 왔을 때 그 사람은 무엇을 선택할까요”라고 말한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면 번영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에게 영상을 보여줬는데 좋아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또 “아름다운 해변에 콘도 혹은 호텔을 건설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는 말도 했다.

 

정상회담의 결과를 놓고 뒷말이 많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보장을 약속한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회담이었다는 게 중평이지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명기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트럼프가 졌다는 시각도 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봤는지 트럼프는 “나는 본능적으로 거래를 원하는 사람을 알아본다. 김 위원장이 거래를 더 원한다”고 말했다. 새 협상은 정상 간 합의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르다. 흔히 작은 장사꾼은 이문만을 우선하고 큰 장사꾼은 믿음을 먼저 생각한다고 한다. 트럼프와 김 위원장이 둘도 없는 파트너가 되기를 바란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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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체제안전 보장을 제공하고, 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동의 노력, 북한의 4·27 판문점선언 재확인과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노력, 북한 지역의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 등 4개항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또 정상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이른 시점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격이 맞는 북한 고위급 인사 간에 후속 협상을 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백악관 방문 요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70년 적대관계를 털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의 길을 함께 가기로 합의한 것을 환영한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지구상 유일의 냉전 지역이던 한반도가 군사적 대결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와 번영의 중심지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번 회담은 포괄적이며 선언적이다. 특히 합의에서 미국이 원하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가 빠졌다. 비핵화의 구체 조치나 시한이 담기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미국 입장에서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 재확인’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70년 동안 대결해온 양국의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만나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큰 틀의 공동 목표를 설정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냉전과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비핵화 로드맵은 실무자들 간의 후속 회담에서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양국 정상 간 합의는 실무자들이 관여한 종래의 북·미 합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다. 북한이 절대적 존재인 김 위원장이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싶다. 북한이 CVID란 표현에 대해 무조건 항복이 연상된다며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CVID와 유사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4·27 판문점선언도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고 돼 있다.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데 실질적으로 CVID 없이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체제안전 보장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약속한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에 따른 필수적인 상응 조치이자 북·미 적대정책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번에 체제안전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핵화 이행 조치를 협상하는 후속 회담 과정에서 다뤄질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북·미 수교 역시 매우 중요하다. 비핵화를 촉진하고, 비핵화를 완결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 폐기와 수교를 통해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 바란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합의는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료와 평화협정이 체결될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기회에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해체해 지구상 유일한 냉전을 제거해야 한다. 특히 종전선언은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 보장의 첫 단계로, 남·북·미만의 뜻만 모아지면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북한과 협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매우 도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대화 기간 동안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할 방침을 시사한 것으로 공식적인 합의 못지않은 중대 사안이다. 북한이 그간 미국의 적대행위와 핵개발의 원인으로 한·미 군사훈련을 지목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실질적인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맥락 없이 불쑥 언급한 것이어서 한·미 협의를 통해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두 정상이 단독 및 확대 회담과 오찬을 함께하며 신뢰를 쌓은 것은 합의 못지않게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김정은 위원장은 안보와 번영을 위한 역사적 인물로 기록될 것”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단 하루 회담했지만 신뢰가 쌓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정상이 자주 만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미국의 북핵 우려와 북한의 체제안전 우려를 불식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정상이 계속 만나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번에 7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신뢰와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두 정상이 정상회담을 열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 노력을 약속한 것만 해도 진전이다. 그러나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 특히 비핵화 합의가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미국 주류와 보수층을 설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간 미국 내 여론이 공동성명에 CVID 표현이 담기는지 주목해왔다는 점에서 회담 성과 논란이 심화될 수도 있다.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 때 그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진 것이 그런 관측을 낳게 한다. 논란이 장기화될 경우 자칫 비핵화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 가급적 빨리 북·미 간 후속 회담을 열어 정상회담 합의를 뒷받침하는 가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트럼프와 김 위원장은 이제 공동운명체가 되었다. 정상들이 직접 나선 만큼 북핵 해결 과정을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뿌리 깊은 반목과 갈등이 일거에 해소될 수는 없다. 만남과 협상을 통해 신뢰를 쌓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진전된 조치를 만들어 나가는 길밖에 없다. 한국 정부의 지원과 중재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오랜 세월 한반도를 압박해온 분단과 냉전을 끝내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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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세기의 만남’이 12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다. 북·미 두 정상이 성공적인 합의를 이뤄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적대관계가 청산되는 전기가 마련된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반도에만 남은 냉전구조를 해체하는 위대한 출발선에도 두 사람은 나란히 서게 된다. 70년간 반목과 대립을 거듭해온 양국 정상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 자체만으로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사변적 의미가 있다. 이미 두 정상이 이틀 전인 10일 싱가포르 현지에 입국해 리셴룽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등 사전 일정을 시작한 것은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 부여하는 무게감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북한이 요구해온 ‘불가역적’ 체제안전 보장 및 제재해제가 어떤 수준에서 거래되느냐일 것이다. 두 정상이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전체 일정을 포괄적으로 합의하되 그 과정을 최대한 압축해 단계적·동시적으로 이행한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담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비핵화-체제 보장의 초기 조치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담아낼지가 초점이 될 것이다. 북한이 통 크게 비핵화 초기 조치를 이행하고, 미국도 종전합의는 물론 외교관계 수립 일정을 합의문에 명시하는 방안이 합의될 수도 있다.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에는 눈에 띄는 점들이 적지 않다. 우선 북한 최고지도자가 중·러·몽골이 아닌 제3국을 정식 방문한 것은 1984년 김일성 주석의 동유럽 순방 이후 34년 만에 처음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미 합중국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첫 상봉과 회담을 위해 중국전용기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싱가포르에 도착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제”와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들”이라고 회담의제를 공개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외국 방문을 귀국 전에 보도한 것도 이례적인 데다 타국 항공기 편을 이용한 사실을 주민들에게 솔직하게 공개한 것도 파격이다. 체면과 자존심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의 성향이 반영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회담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북한의 각오도 엿보인다.

 

미국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의 오찬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내일 아주 흥미로운 회담을 하게 된다. 아주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트럼프가 발신해온 메시지는 가변적이지만 이제는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그는 싱가포르 출발에 앞서 “북한을 위대하게 만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단 한번의 기회”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회담을 ‘과정의 시작’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북한과 관계 맺는 것을 최소한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회담에 그치지 않고 워싱턴 혹은 평양에서 후속 회담을 이어가며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최종목표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이 엿보인다.

 

트럼프의 표현대로 북·미 정상회담은 ‘미지의 영역’이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 위에 두 사람이 서게 될 줄은 반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양측 당국자들의 성의있고 진지한 노력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담대한 결단이 더해져 비로소 열린 길이다.

 

70년에 걸친 뿌리 깊은 적대관계와 북핵 문제가 한 차례 회담으로 일거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두 정상이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싱가포르 회담이 평화로 가는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기를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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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뉴스를 다루는 기자들의 일과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를 확인하는 것이다. 기사거리가 될 만한 돌발 발언을 트위터에서 즐겨 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10분마다 한 번씩 컴퓨터 자판의 ‘F5’ 키를 눌러 트위터 타임라인을 ‘새로고침’하면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6·12 북·미 정상회담처럼 주요한 행사를 앞둔 시기엔 더욱 그렇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선수가 트위터로 설화를 일으키자 “트위터는 시간 낭비”라고 일갈한 바 있는데,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는 그 자신뿐 아니라 전 세계 외교관과 기자들의 시간까지 축내고 있다.

 

그러나 트위터를 확인하는 외국 기자들의 수고는 트럼프가 ‘우리 대통령’인 미국 시민들과 기자들의 피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이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언행을 일삼는 대통령이 미국 현대사에 또 있었을까. 가장 최근의 사건은 지난 8일부터 이틀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벌어졌다. 앞서 미국이 캐나다와 유럽연합, 멕시코산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탓에 캐나다와 유럽 정상들은 이 회의에서 트럼프의 양보를 받아내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서울역 대합실의 TV 화면에 나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애석하게도 트럼프의 정신은 온통 북·미 회담에 팔려 있었다. 그는 북·미 회담을 핑계로 퀘벡에 다른 정상들보다 늦게 도착했고 일찍 떠났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도 성의가 없었다. 그는 토론에 집중하지 않고 회의장을 어슬렁거려 다른 정상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회의 마지막 날 그는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대한 지지를 (이 또한) 트위터로 돌연 철회하고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정직하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트럼프가 공동성명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고 일찌감치 퀘벡을 떠난 뒤, 트뤼도가 기자회견에서 “미국에 대한 보복관세를 예정대로 7월1일부터 부과하겠다”고 말한 게 이유인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무능한 대통령을 둔 대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트럼프가 미국인의 일상에 재앙을 불러올 시간이 머지않았다고 내다봤다. 칼럼은 그 전조로 지난해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를 강타한 허리케인 ‘마리아’의 사례를 들었다. 지난달 29일 외신 보도를 보면 하버드대 연구진이 푸에르토리코 3299가구를 직접 방문 조사한 결과 지난해 9~12월 마리아로 숨진 사망자는 최소 4645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발표한 공식 사망자 64명의 70배가 넘는 수치다. 수천명이 숨지는 대형 재해였지만 트럼프가 무엇을 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무기력했던 푸에르토리코 정부를 비난한 것 외엔 눈에 띄는 발언이 없었다.

 

대통령이 외교·통상에서 저지른 실책이 시민들의 삶에 피해를 주기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자연재해나 신종 감염병 등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의 무능이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즉각적이다. 마리아는 미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또 다른 재난이 본토를 위협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 지식인들은 트럼프의 임기가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가 임기 4년 동안 차근차근 쌓아올린 과오와 무능이 미래의 어느날 엄청난 액수의 청구서가 돼 시민들에게 돌아올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무이자할부로 여기저기서 야금야금 카드를 긁었다가 결국 빚이 산더미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안타까운 대목은 이 무능한 대통령이 하필이면 ‘세계 대통령’인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대통령이 저지른 실정의 결과는 언젠가 세계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때 세계가 느끼게 될 피로감은 대통령 트위터를 새로고침하는 수고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미국 투표권이 없는 한국의 기자는 그저 차기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현명하게 투표하기를 바랄 뿐이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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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그랬듯 미국과 중국 간에도 정보 유출이 종종 논란거리로 등장한다.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후 미 정보 당국은 참석자들의 휴대전화를 수거해 보안점검을 실시했다. 중국 쪽이 정보를 빼내간 낌새가 감지된 탓이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미 고위 당국자의 일화도 도청 의혹을 뒷받침한다. 그는 호텔 방의 카드키가 작동하지 않아 자주 바꿔야 했다. 그리고 그 키를 미국으로 가져가 살펴보니 마이크가 내장돼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중국이 ‘우정의 핀’을 선물하자 수행원 중 아무도 달지 않았다. 중국의 도청 능력에 대한 공포가 낳은 해프닝이었다.

 

‘세기의 담판’인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 싱가포르에서 치열한 정보전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데다 회의 장소가 중국의 뒷마당이다 보니 미국이 보안에 신경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 언론들도 이번에는 유달리 정보전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당국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보안을 요하는 대화를 나눌 때 반드시 휴대전화를 끄라는 지침을 내렸다. 심지어 꺼진 휴대전화도 중국이 해킹할 수 있다며 배터리를 분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특기인 미인계에 경계령이 내려진 것은 물론이다.

 

미국이 경계해야 할 것은 중국의 도청만이 아니다. 미 프린스턴대 역사학자 줄리언 젤라이저 교수는 트럼프가 유의해야 할 4가지 중 하나로 기밀유지를 꼽았다. 중·소와 데탕트를 일궈낸 리처드 닉슨과 로널드 레이건처럼 진짜 제안은 마음속에 품으라며 “이번만큼은 트윗 남발을 억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트럼프가 보안 장치가 없는 일반 스마트폰을 쓰는 것도 걸리지만, 협상의 민감한 부분까지 트윗에 날릴까봐 걱정한 것이다.

 

스파이가 캐낸 정보가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말은 과장이다. 독일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눈치채고도 막지 못했다. 정보 분석가들은 독일이 역정보에 당했다고 하지만 나치 멸망은 시대정신의 결과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로지 70년 묵은 적대 관계 해소만 염두에 두고 담판하면 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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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해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외항에 정박하고 있는 수백 척의 대형 유조선과 화물선을 보면서 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평양과 판문점을 마다하고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하자고 고집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싱가포르에서 경제를 개방하면서도 권위주의적 통치를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이야기한 데서 보듯이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맞교환하는 정상 간의 빅딜이 성공한다면 종전선언, 불가침협정, 수교,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한반도와 동북아도 마침내 탈냉전시대로 들어갈 것이다. 따라서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동북아 질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미리 점검하는 것은 남북평화체제 구축 준비를 위해 필요하다.

 

첫째, 동북아는 ‘정치와 안보가 경제를 압도’(power over plenty)했던 냉전시대의 국제질서에서 ‘경제우선의 탈냉전질서’로 변모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국익우선주의와 김정은 위원장의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발전 총력노선으로의 전환이 결합하여 북·미 간 빅딜이 가능했다.

 

북·미 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집중노선의 성공을 가로막는 정치적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매진할 것이다. 주변국들의 대북투자와 교역을 막는 장애물인 미국의 대북제재를 풀게 하기 위해 완전한 비핵화를 북·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일정보다 빨리 해치울지 모른다.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북·일 수교와 납치자 문제에 대해 통 큰 양보를 할지 모른다. 대북제재를 풀어야 미국이 지배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중국이 지배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으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주변 경제강국인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으로 하여금 대북투자를 하도록 유인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둘째, 동북아 안보질서는 북·중·러 북방삼각동맹과 한·미·일 남방삼각동맹이 대치하는 이념에 기반한 적대적 동맹관계 구조에서 동북아 6개국이 평화이익에 따라 지역안보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육지, 바다, 하늘을 개방하면 주변국들에 엄청난 평화이익이 발생할 것이다. 부산에서 파리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면 한국과 일본은 물류에서 이익을 볼 것이고, 중국은 일대일로를 유라시아 대륙횡단철도와 연결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일대일로의 영역을 동북 3성과 한반도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시베리아 가스를 공급하는 가스관 라인을 북한을 거쳐 일본까지 연결하면 유럽철석탄공동체에 버금가는 지역에너지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개방으로 발생하는 평화이익이 3각동맹 간의 대치에서 발생하는 안보비용을 초과한다면 관련 당사국들은 평화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방지하고 집단적인 평화를 보장받기 위해 지역안보공동체를 발전시킬 유인을 갖게 될 것이다.

 

셋째, 종전선언은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김정은 위원장은 주한미군을 한반도 또는 동북아 평화유지군으로의 지위 변경을 통해 계속 주둔하기를 바랄지 모른다. 주한미군 주둔 용인은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이미 비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주한미군의 주둔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받아들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주둔 비용분담의 차원에서 보고 있는 듯하나,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이 대중국 억제에 있기 때문에 대중국 억제의 최전선인 남중국해에 미국의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동북아에서의 대중국 억지력으로서 주한미군의 가치를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돕는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를 카드로 제시할 수 있다는 친중국적인 키신저의 조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 화교들이 팍스 아메리카나 질서에 스스로 편입됨으로써 오늘의 번영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따라서 경제발전집중 노선의 성공은 미국 자본과 금융의 북한 유입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평양에 트럼프타워가 들어서고 맥도널드 가게가 문을 연다는 것 자체가 체제안전과 미국 자본 주도의 대외개방과 발전을 보장하는 상징이 될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광주과기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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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다고 백악관이 발표했다. 아직 회담 의제와 실무 협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사실상 회담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셈이다. 이제 회담의 성패는 온전히 트럼프와 김정은의 손에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으로 미뤄 이번 회담은 며칠 동안 열릴 공산이 없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협상이 매우 잘되고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은) 매우 중요한 며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이 여러 날에 걸쳐 열리는 건 나쁜 소식이 아니다. 선언적인 입장 표명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종전선언 및 남·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도 있다. “싱가포르에서 북한과의 만남이 큰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이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미국과 달리 북한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 이후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싱가포르 일정이야 보안관계상 공개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김 부위원장의 방미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전달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북한의 침묵은 미국에 대한 압박수단이 되겠지만 회담이 임박한 지금에 와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6·12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결정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 전경. 5성급 최고급 휴양시설인 이곳은 250m가량의 구불구불한 진입로를 거쳐야 하는 데다 높은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어 경호와 보안이 용이하다. 싱가포르 _ 로이터연합뉴스

 

여러 난관을 뚫고 회담이 성사된 것을 보면 김정은과 트럼프의 강력한 의지는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회담 성공은 의지만으로 이뤄질 순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먼저 비핵화-체제안전 보장의 병행 원칙이다. 이번 회담은 비핵화를 위한 것이지만 비핵화라는 동전의 뒷면은 체제 보장임을 명심해야 한다. 비핵화만 요구하거나 비핵화를 먼저 하라고 고집한다면 회담은 깨질 수밖에 없다.

 

둘째로는 상호 존중의 원칙이다. 역대 북·미대화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궁극적으로 서로를 진지한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은 사상 처음으로 양측 최고지도자가 나선 만큼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이를 통해 두 사람이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면 회담은 절반 이상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라는 역사적 대업을 완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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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미 3자 협상을 통해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방안을 밝힌 이후,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차이나 패싱’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이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중국은 정전협정의 서명국으로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강조하는 한편 오는 8일 칭다오에서 개최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북·중·러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원하는 남·북·미·중 4자 협상이 즉각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을 두 번째 만난 이후 태도가 바뀌었다”고 지적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연기를 선언했던 일 이후, 남북 모두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 중국을 장기간 배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북·미가 비핵화에 합의한 후 경제 지원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하면, 중국이 미국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다면, 북한 경제의 재건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물론 개혁·개방정책의 경험을 전수하는 데 중국보다 더 적극적인 국가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낙후된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만 향후 10년간 270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증세를 하거나 국채를 발행하지 않는 이상, 현재 우리 정부가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남북협력기금(1조6000억원)과 공적개발원조(3조482억원)밖에 없다. 또한 우리 민간 기업이 정치적 위험이 큰 대규모 투자를 당장 추진할 가능성도 아주 희박하다.

 

미국이 핵무기 폐기 대가로 북한에 제공할 공식적인 경제지원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다. 정부 차원의 공식적 자금 지원은 군사동맹국에조차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기조에 부합하지 않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대규모 개발원조보다는 제재 완화를 통한 미국 민간 자본의 투자 확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 배상금으로 약 200억달러(약 21조4000억원)를 지불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총리가 국교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해결이 선행되기 전에 배상금이 지급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같은 다자개발은행(MDB)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이 세계은행과 ADB의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가입 전에 공식적인 지원을 받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또한 이 기구들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회원국이 되어야 하는데, 최대 지분을 가진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더라도 최소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규모 자금을 당장 지원할 수 있는 국가는 중국밖에 없다. 중국은 5월 북·중 정상회담 직후 북한 노동당 핵심 간부로 구성된 경제투자사절단을 초청해 경제협력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여기에서 중국이 주의해야 할 점은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에 위배되지 않게 협력의 속도와 범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만약 중국이 보편적 국제규범보다 북·중 혈맹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한다면, 중국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AIIB는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AIIB 정관에 따르면, 총회에서 최대다수결(3분의 2 이상 회원국 총회 참가에 4분의 3 이상 투표권 찬성)을 확보하면 비회원국에 투자를 할 수 있다. 중국·러시아·인도·한국 등 주요 회원국이 지지한다면, 북한에 대한 지원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 북한이 당장 필요로 하는 철도·도로·항만 개발이 AIIB의 주력 사업이라는 점도 유리한 점이다. AIIB를 통한 대북 경제지원은 시진핑 정부의 일대일로 구상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연결시키는 고리가 될 수 있다. 이 사업을 통해 환서해경제벨트와 환동해경제벨트가 중국·몽골·러시아 경제회랑과 연계된다면, 한국·북한·중국·러시아·몽골을 포괄하는 새로운 동북아경제권이 형성될 것이다.

 

중국이 국제규범을 존중하면서 북한 경제개혁과 동북아경제권 형성에 건설적인 역할을 확대한다면, ‘차이나 패싱’ 논란은 저절로 수그러들 것이다. 따라서 지금 중국은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남·북·미·중 4자 회담을 주장하기보다는 종전선언 이후 평화체제 구축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왕휘 |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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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슈퍼파워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심상치 않다. 무역·안보 분야 갈등이 인권 문제로까지 번지면서 세계를 불안케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3일(현지시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운동 29주년 성명을 내고 “중국 정부가 모든 시민의 보편적 권리와 근본적 자유를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국무장관이 타국 인권 문제와 관련해 성명을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중국은 “미국은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을 즉각 중단하라”고 반발했다.

 

대만을 둘러싼 갈등도 심상치 않다. 로이터통신은 4일 미국이 연내 항공모함의 대만해협 통과 작전을 한때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대만해협은 폭이 좁은 곳은 130㎞가량에 불과해 항모전단의 통과는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대만을 겨냥한 군사훈련 강화에 맞대응하는 성격이 짙다. 중국은 지난 3월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으로 대만해협을 통과했고, 4월부터는 전략폭격기 훙-6K 등이 여러 차례 대만 주변 공역에서 무력시위를 전개해왔다.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은 임계치에 육박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 허레이 중국 군사과학원 부원장은 지난 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에서 거친 비난전을 펼쳤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주요 섬과 암초를 군사기지화하자,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으로 맞서고 있다. 지난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3차 무역협상이 결렬되면서 무역갈등도 혼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국 갈등은 중국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규정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전략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국 태평양사령부가 창설 71년 만에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간판을 바꾼 것도 서태평양, 남중국해, 인도양을 잇는 해양라인을 구축해 중국의 세력 확장을 막겠다는 전략이 담겨 있다.

 

미·중 갈등이 특히 한반도의 정세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걱정이다. 북핵 문제가 한창일 때는 양국 간 이해가 일치했지만 북한이 비핵화와 평화구축에 시동을 걸자 양국이 전환기 한반도의 주도권 경쟁에 나서는 형국이다. 남·북·미 종전선언 추진에 중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한 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미·중 갈등의 불똥이 튀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면밀한 상황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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