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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55

[여적]샌더스가 남긴 것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10년대였다. 하지만 반짝했을 뿐 역사적으로 사회주의가 미국에서 견실하게 뿌리내린 적은 없었다. 아마도 서구의 발달된 산업국가 중 사회주의가 주요 정당의 강령으로 자리 잡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미국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난해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 뛰어들었을 때 힐러리 클린턴은 누가 봐도 벅찬 상대였다. 미국 북동부의 작은 주 버몬트를 정치무대로 삼아 평생 비주류의 길을 걸어온 샌더스는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22개주 경선에서 클린턴을 이겼다. 그의 지지가 없다면 클린턴은 본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이길 수 없을지 모른다. 14일 워싱턴DC 프라이머리가 마무리되며 135일간 펼쳐진 클.. 2016. 6. 16.
[여적]중국의 언론검열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던 시절 한·중 언론인 교류 행사에 참석했다가 20대 평론원(우리의 논설위원격)을 만난 적이 있다. 통상 수습기자 생활을 마친 후 취재부서로 배치받는 국내 언론계 풍토에서 보면 매우 이례적이어서 처음에는 의아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논조는 공산당의 방침을 따르면 되고 민감한 사안은 보도지침이 내려오니 20대 논설위원이 가능하겠구나’라며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중국 공무원들은 좀처럼 외국 언론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가뭄에 콩 나듯이 열리는 고위 공직자들의 기자회견은 사실상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질문에 대한 사전 심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중국 주재 외국 기자들은 중국 외교부에서 매년 심사를 받아 기자증을 재발급받아야 한다. 중국 공산혁명을 이끈 마오쩌둥(毛澤東)은.. 2016. 3. 30.
[여적]오바마의 쿠바 방문 30대 초반의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혁명군은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대대적인 군사작전에 맞서 차곡차곡 승리를 쌓아갔다. 가난한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쿠바 혁명군은 1959년 1월 혁명에 성공했다. 한때 세계 젊은이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피델 카스트로는 지독한 반미주의자였다. 미국 플로리다 해안에서 약 145㎞ 떨어진 쿠바에서는 혁명 성공 후 미국 기업가들의 재산이 몰수됐고 양국 관계는 1961년 끊겼다. 쿠바와 단교한 미국 대통령이 바로 존 F 케네디였다. ‘검은 케네디’로 불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 역사적인 쿠바 방문길에 나섰다. 오바마는 진보적 이미지의 케네디를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는다. 케네디가(家)도 오바마의 적극적 후원세력이었다. 오바마는 2013년 숱한 논란에도 .. 2016. 3. 21.
[특파원칼럼]전략 없는 ‘냉온탕 대중외교’ 이명박 정부 시절 한·중관계는 전반적으로 냉각기였다. 대미 편중외교로 중국이 많이 섭섭해했다. 천안함 사태와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을 거치면서 대응방향을 두고 1992년 수교 후 최악의 상황까지 갔다. 한국의 차기 정부에서 한·중관계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은 조짐은 2012년 8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나타났다. 시진핑(習近平) 당시 부주석이 전격적으로 참석한 것이다. 미래의 중국 최고지도자가 참석하자 북한을 의식하지 않고 한국과 가까워지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행사에 참석했던 한국 기자들의 취재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그가 보여준 온화한 미소는 꽤 인상적이었다. 2012년 11월 18차 공산당대회에서 그는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고, 박근혜 대통령은 2.. 2016. 2. 2.
[특파원칼럼] 북한을 버릴 수 없는 중국 북·중관계는 ‘혈맹’이란 말로 곧잘 표현되지만 양국 간 갈등의 뿌리는 꽤 깊다. 1992년 7월15일 첸치천(錢其琛) 당시 중국 외교부장이 평양에 도착, 헬리콥터를 타고 평안남도 연풍호수로 향했다. 김일성 주석 별장에 도착한 첸치천은 자신을 기다리던 김 주석에게 “개혁·개방의 필요에 따라 중국은 이미 한국과의 수교를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변함없이 조선(북한)과의 우호관계를 귀하게 여길 것이며 조선의 사회주의 건설을 지지한다”고 위로했다. 김 주석은 “중국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며 “조선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어려움이 생기면 스스로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첸치천 통역으로 동행했던 장팅옌(張庭延) 초대 주한 중국대사는 2012년 한·중 수교 50주년을 맞.. 2016. 1. 12.
중국 재벌의 홍콩 언론 인수 홍콩은 중국 주권이 미치는 땅이지만 일국양제(一國兩制)에 따라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 시내 가판대나 서점에서는 중국 권부의 얘기를 다룬,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사를 실은 잡지들이 버젓이 판매된다. 최고 지도자들의 건강문제까지 과감하게 기사화할 정도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기사도 많지만 홍콩이 누리는 언론자유가 충만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민감한 내용을 담은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사후 회고록 도 홍콩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중국어 신문 명보(明報)는 홍콩에서 가장 신뢰받는 매체에 속한다. 중국의 인권과 정치에 성역 없는 비판을 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매체로 보도의 정확성도 높다. 홍콩 식자층은 물론 외국인들이 중국을 비교적 소.. 2015. 12. 22.
공부론(共富論)의 부상 중국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농촌 주민들의 생활을 얘기할 때 “소금이 있는데 간장은 뭐하러 사?”라는 말이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적이 있다. 구이저우(貴州)성의 한 빈농이 했던 말로 기억된다.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화교 출신의 게리 로크는 지난해 2월 이임을 앞두고 “베이징 같은 대도시는 중국을 대표할 수 없다”면서 “외딴 지역의 작은 마을들을 방문해야 중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농촌에서 정부가 정한 빈곤선인 연간 2300위안(약 41만원)을 밑도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인구는 7017만명으로 남북한을 합친 수와 맞먹는다. 중국에서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이 최근 화두로 떠올랐다. 개혁·개방에 따른 경제 성장의 과실을 공동으로 누리자는 말이다. 지난 10월 하순 열린 공산당 제18기 중앙.. 2015. 12. 1.
‘종횡무진’ 시진핑의 고민 베이징에서 ‘중국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열린 국제포럼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3일 저녁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중국 외교의 고민을 전했다. 박 시장은 푸잉(傅瑩)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회 주임의 말이라며 “이분이 아주 우아하게 영어로 잘 설명했는데 실제로는 중국 외교의 큰 고민들을 눈치채게 됐다”고 했다. 푸 주임은 외교부 부부장(차관) 출신으로 중국 외교에서 늘 ‘여성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닌 베테랑 외교관이다. 박 시장은 “그가 현존하는 세계질서를 제대로 존중하고 참여하겠다고 하면서도 현존하는 세계질서라는 것이 결국은 중국을 배제하는 게 아니냐, 이런 관점의 미묘한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박 시장은 “푸 주임이 미국과 정직한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2015. 11. 9.
[특파원칼럼] 단둥에서의 단상(斷想) 지난 16일 북·중 호시무역구 설립 행사 취재차 중국 단둥(丹東)시를 찾았다가 압록강에서 모터보트를 탈 기회가 있었다. 대형 유람선도 있었지만 북한 땅과 주민들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쾌속 보트를 택했다.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관광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보트에 탄 10여명의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들 시선은 북한 땅에 고정됐다. 강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 자전거를 들고 목선에 오르는 주민들이 보였다. 아마도 압록강변의 다른 북한 지역으로 가는 듯했다. 총을 멘 채 주민을 감시하는 북한군 병사는 야위어 보였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주민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몇 해 전 강가의 북한 주민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는 관광객들 행태를 두고 ‘인간 사파리’ 관광이.. 2015.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