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효첨의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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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어효첨의 상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1. 14.

시절이 하 수상하고 전 국민이 ‘멘붕’에 빠져 있어 어떤 글도 무용함을 느낀다. 게다가 예상을 뒤엎고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예측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거나 설득이 안되는 사람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래도 주역에 나오는 물극필반(物極必反·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이라는 말처럼 역사를 되짚어 보고 싶다.

 

중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국정농단의 주인공은 청나라 말기 화신(1750~1799)이다. 건륭제의 딸과 화신의 아들이 결혼하면서 그는 황실의 사돈이 됐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지위에 오른 그는 황제에게 가는 모든 문서가 자신을 거쳐가도록 했다.

 

전쟁에 나가는 장수에게 돈을 받고 임명장을 수여하고, 문화사업에 힘을 기울인다는 명분하에 땔감, 쌀, 소금 등의 유통을 일원화한 다음 자신에게 뇌물을 바친 상인에게 독점권을 줬다.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선거 다음날인 9일(현지시간) 뉴욕의 트럼프타워 앞에서 “내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찢어진 성조기를 휘두르고 있다. 이날 미국 곳곳에서 반트럼프 시위가 열렸다. 뉴욕 _ AFP연합뉴스

 

그렇게 모은 재산이 당시 12년 치 세수에 해당하는 9억냥에 이르렀다고 한다. 건륭제가 죽자 아들인 가경제는 화신에게 20여개에 달하는 죄를 물어 자결을 명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몰수한 화신의 재산을 국고로 귀속시키지 않고 황실로 빼돌렸다.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화신이 죽으니 가경이 배불리 먹었다”고 비꼬았다. 측근의 농단으로 청나라는 패망의 길로 들어섰고, 민생의 파탄은 극에 달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교훈으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욕심으로 가득 찬 한 민간인의 국정개입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지만 우리가 청나라의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이번의 국정농단과 관련해 해외에서는 종교, 무속, 영혼, 영적 멘토 등 비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음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망하는 집안의 특징 중 하나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점쟁이나 잡술가에게 공사 간에 길흉 묻기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송천필담(松泉筆談)>이란 책에 나온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더라도 러시아 제정 말기 라스푸틴이나 고려 때 신돈, 구한말 민비를 현혹시킨 과부 무당 진령군 등 풍수나 주술을 통해 나라를 농단한 사례가 많다.

 

하지만 지도자의 현명한 판단으로 슬기롭게 대처해 오히려 국정을 안정시킨 사례도 있다. 성군인 세종대왕 시절에도 풍수와 관련해 말들이 많았나 보다. 당시 집현전 교리였던 어효첨이 다음과 같은 멋진 상소를 하였고 세종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무릇 운수의 길고 짧음과 국가의 화복은 다 천명과 인심에 달린 것이며 실로 풍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천명으로 주맥(主脈)을 삼고, 민심으로 안대(案對·얼굴을 직접 대해 소통함)를 삼아 하늘의 밝은 명령을 돌아보시고 백성의 험악한 반응을 두려워하소서.” 아! 지금 이런 사람은 없는 걸까?

 

이인재 |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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