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된 트럼프의 협상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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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노출된 트럼프의 협상 전략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5. 22.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이 혼란 상태다. 북핵 협상은 위기 상태이고, 미·중 무역협상은 보복관세를 주고받는 악순환에 빠졌고, 이란과는 전쟁 위기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이 혼란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은 최근 미국 조야의 최대 관심사인 이란 문제에서 확인된다. 그는 20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이란과의 협상준비 보도는 가짜뉴스”라며 협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전날에는 “이란이 싸우길 원한다면 그것은 이란의 공식적인 종말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미국 대사관 근처에 로켓 포탄이 날아든 데 대한 반응이었다. 트럼프는 멀쩡하게 지켜지던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의 원유수출 금지 제재를 부활하고, 이란 정부가 운영하는 군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이란이 반발하자 항공모함과 B-52 폭격기를 급파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대화를 모색 중이다. 백악관은 이란에서 미국 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는 스위스 정부에 직통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트럼프가 전화를 기다린다고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대북 정책에도 같은 협상 패턴이 적용됐다. 그는 2017년 여름 북한에 대해 “완전한 파괴”와 “화염과 분노”를 위협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시작된 후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며 180도 달라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면서 한편에선 관세폭탄을 퍼붓고 있는 미·중 무역협상에서도 전형적인 스타일을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루이지애나주 방문을 마치고 백악관에 귀환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트럼프의 협상법은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에 비유된다. 미국 대통령이 핵전쟁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상대국들에 믿게 해서 쉽게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이다. 리처드 닉슨 정부 당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고안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스콧 케네디 선임고문은 트럼프의 미·중 무역협상을 ‘미친 삼촌 전략(crazy uncle strategy)’으로 평가했다. 테리 매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는 하루 종일 폭탄 트위터를 날리는 트럼프를 향해 “다락방에 사는 미친 삼촌 같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는 치킨게임에서 미치광이 전략은 통할 수 있다. 진심을 알 수 없는 트럼프의 발언들은 예측 불가능성을 키워서 협상력을 높인다. 트럼프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상당하다. 실제 트럼프의 전격적인 1차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에 김정은은 공손한 표현의 친서를 보낸 바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두번째)이 20일 장시성 간저우시에 있는 희토류 생산업체 진리영구자석과기유한공사에서 희토류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간저우_신화연합뉴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이 전략은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해서 통하지는 않는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은 이제 예측 가능한 스타일이 됐다. 실제 중국, 북한, 이란 어느 나라도 트럼프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다. 케네디는 “트럼프의 미친 삼촌 전략은 피로감뿐 아니라 듣는 이들이 그의 폭발에 익숙해지고, 그 폭발이 순간적 불만인지 실질적 위협인지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무색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트럼프의 전략은 완전히 노출됐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나시우스는 “트럼프 대외정책의 문제는 집권 2년이 넘으면서 해외 국가들이 그를 간파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파괴적인 스타일은 중국과 북한 정책에서 수익률을 떨어트렸다”고 지적했다. 또 강경책과 외교 사이를 오가는 그의 언급이 “한때 협상력을 만들어 줬지만 이제는 혼란만 야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식 협상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예측 불가능성은 미국의 신뢰 추락으로, 특히 불확실성은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치킨게임 당사자들이 모두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한다면 상황은 더욱 위험해진다. 트럼프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백악관에는 ‘전쟁을 속삭이는 자’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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