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한반도 평화의 꿈’은 왜 실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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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문재인 정부 ‘한반도 평화의 꿈’은 왜 실패했나

by 경향글로벌칼럼 2021. 8. 20.

2018년 2월10일 김여정 당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특사로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김 부부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신영복 교수가 쓴 ‘통(通)’이라는 휘호와 한반도 모양을 옆으로 누인 이철수 판화가의 작품을 함께 걸어 ‘통일’이라는 글자를 완성한 배경 앞에서다. 이 사진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통일은 국가 대 국가의 ‘통일(統一)’이 아니라 소통하고 협력하고 왕래하는 ‘통일(通一)이다. 국가적 통일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고 후유증도 크기 때문에 전 단계로 군사적 긴장을 늦추고 평화를 구축해 교류협력을 시작한 뒤 동질성을 회복하면서 공존·상생하는 길을 먼저 모색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이기도 했다.

지난 15일 “우리에겐 아직 꿈이 있다”고 강조한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회한이 드러난다. 남은 임기 동안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상의 실패 선언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북·미 대화가 속도를 내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식이 변화된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는 ‘2017년 11월29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북한이 화성-15형 미사일 발사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능력을 과시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날이다. 이후 북핵 문제는 차원이 달라졌다. 북한은 더 이상 남북만의 문제나 동북아시아 지역안보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이슈이며 미국의 안보 문제다. 지금 북한이 드러내는 대외전략의 원천도 핵무력 완성으로 인한 자신감이다. 당연히 이에 대응하는 국가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했으니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중단되어야 한다’며 해묵은 ‘쌍중단’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이 비난받는 이유는 달라진 북핵 상황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미 핵·미사일 능력을 모두 갖춘 상황에서 쌍중단이라는 거래는 성립되지 않는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인 2018년 3월1일 새벽 최선희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은 숙소인 멜리아 호텔 로비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계산법이 이상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했는데 왜 미국은 제재를 풀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억지다. 제재는 핵·미사일 실험 자체가 아니라 핵·미사일 실험에 따른 핵능력 증강에 대한 대응이다. 따라서 제재는 실험 중단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핵능력의 감축이 입증되어야 완화된다. 계산법이 틀린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상황이 변했는데 ‘과거의 매뉴얼’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에는 비핵이 수반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를 통한 비핵’을 택했다.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협정으로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비핵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햇볕정책과 같다. 하지만 이 방법은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시작하고 초보적 핵 기폭장치를 만지작거리던 단계에서 시도했던 방법이다. 과거에는 유효했을지 몰라도 간난신고의 대장정 끝에 결국 핵무력 완성에 도달한 지금의 북한에 ‘핵개발의 험난한 길을 걷지 말고 다른 선택을 하라’는 권유는 의미가 없다.

 

문재인 정부 각료와 더불어민주당은 지금도 도서관 자료실에서나 찾을 수 있는 1990년대 페리 프로세스나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북·미 협상 모델을 거론하고 있다. 고민도 전략도 없이 과거의 패턴에 의존해 변화무쌍한 정세에 대응하려 하니 꿈이 이뤄질 리 없다. 지금의 북한은 예전의 북한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은 훨씬 어렵고 복잡해졌다. 남북의 힘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핵 문제를 우회해서 평화로 갈 수 있는 길은 이제 없다. 차기 대선 주자들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한다,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고 핵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식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3단계 방법’과 같은 탁상공론이나 과거의 관성적 정책이 아닌 새롭고 정교한 국가전략을 고민하기를 기대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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