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정상이 ‘임금인상’ 외친 까닭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서의동 특파원의 도쿄리포트

미·일 정상이 ‘임금인상’ 외친 까닭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2. 13.

서의동 도쿄 특파원



 

북한의 3차 핵실험에 가려져 부각되지 않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한 2기 첫 국정연설에 시선을 확 끄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간당 7.25달러(약 7870원)인 미국의 최저임금을 2015년까지 9달러(약 9770원)로 올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같은 날 일본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요네쿠라 히로마사(米倉弘昌) 게이단렌(經團連) 회장 등 경제 3단체장과 가진 의견교환회에서 “실적이 개선된 기업들은 종업원 임금인상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미·일 두 나라 정상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 ‘임금인상’을 화두로 꺼내든 것은 두 나라 모두 ‘내수 살리기’가 경제회복의 관건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베 정권은 무제한 금융완화와 대규모 공공사업 투자를 통해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탈출하겠다는 ‘아베노믹스’를 내걸었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민간소비가 자발적으로 확대돼야 하는데, 가계소득이 오르지 않는 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가계소득이 늘지 않는데 물가만 오르게 되면 서민생활이 파탄해 아베노믹스는 실패하고 만다. 아베 총리가 이례적으로 재계단체장들을 불러 임금 인상을 압박한 데는 이런 절박한 사정이 있다. 아베 내각은 기업이 종업원들의 임금을 올릴 경우 그 상승분에 비례해 법인세를 깎아주는 전례없는 세제대책도 내놨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경향신문DB)


일본 기업들은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이익을 내도 투자하지 않고, 고용과 급여도 늘리지 않은 채 현금만 쌓아왔다. 일본기업의 내부 유보자금은 281조엔으로, 10년 전보다 1.7배 증가했다. 반면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1997년 월 37만엔에서 지난해 31만엔으로 6만엔이 줄었다. 근로자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 대신 임금삭감을 선택한 탓이다. 이런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아베는 완만한 형태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정책목표로 삼았다. 물가가 오르게 되면 현금을 들고 있어봐야 손해이므로 기업들은 투자나 고용·월급을 늘리게 된다. 


2006~2007년의 1차 아베 내각이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추진해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을 계승해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것에 비하면 최근 아베 내각의 움직임은 시장에 깊숙하게 개입하는 ‘큰 정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자증세 문제도 한 달여 만에 처리해버렸다. 영토·과거사 문제에서 ‘극우’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보수적인 아베 정권이 경제정책에서는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인상적이다. 


집권 2기를 맞은 오바마 행정부가 국정연설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들고 나온 것은 중산층 부활을 통해 미국의 성장엔진을 다시 가동시키기 위한 것이다. 오바마는 “중산층을 일으키고 번창시키는 것이 우리 세대의 임무”라고 했다. 중산층을 두껍게 해 민간소비를 확대하는 것이 미국 경제 회복에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두 나라의 움직임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글로벌경제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경제를 이끌어온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이를 대체할 성장엔진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각국은 내수시장을 버팀목으로 활용하려 하는 것이다. 주요국들의 이런 동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수출과 내수 간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외풍에 유독 취약해진 한국에도 시사적이다. ‘수출 외바퀴’를 키우고, 대기업만 중시해온 이명박 정권 5년의 폐해를 박근혜 차기 정권이 얼마나 바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같은 보수 정권인 아베 내각의 움직임도 참고가 될 만하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