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감정 앞세우는 한·중·일 세계기록유산 싸움 자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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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 감정 앞세우는 한·중·일 세계기록유산 싸움 자제해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0. 1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가 그제 조선의 유교 책판과 이산가족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유교 책판’은 문중-서원-지역사회 등의 공론을 모아 찍어낸 공동체 출판물로 조선을 지탱해온 500년 지성의 밑거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산가족 기록물은 전쟁의 비극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생생하게 증언한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번 등재로 한국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13건을 올리게 됐다. 독일 21건, 영국·폴란드 각 14건에 이어 러시아·오스트리아와 함께 4번째이다. 순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공식 기록물은 물론 <난중일기>와 같은 개인의 저작물을 남긴 선현들의 치열한 기록 정신을 상징하기에 그 의미는 크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입한 프랑스인 주베르는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고 증언한 바 있다.


난징기념관 벽면에 쓰여진 난징대학살 희생자수_경향DB


중국이 신청한 기록물 중 난징대학살 자료가 등재된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일제의 반인류적 범죄행위를 국제적으로 확인하고 그런 만행이 되풀이돼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유네스코 차원에서 재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본 정부는 ‘희생자 수 30만명은 과장된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지만 좌절됐다. 한·중·일 3국이 얽힌 ‘세계유산’ 분쟁을 촉발시킨 일본으로서는 자업자득이다. 일본은 지난 7월 자국 내 산업유산 시설물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조선인의 강제징용 사실을 외면함으로써 소모적인 정치싸움을 일으킨 바 있다. 반면 중국의 일본군 위안부 자료가 등재에 실패한 것은 한국에 풀어야 할 숙제를 안겨주었다. 유네스코는 향후 치열한 3국 간 ‘세계유산 싸움’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유산의 등재 결정을 부담스러워 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당장 ‘유네스코의 정치적 이용을 막을 제도개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고 있는 일본이기에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정부는 한·중·일간 유산 싸움에서 뒷북을 쳤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늦었더라도 ‘대항 등재’를 한답시고 감정에 치우쳐 서둘러서는 안된다. 중국의 위안부 기록물이 등재 실패된 이유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네스코 등재기준에 맞는 자료 축적과 논리의 마련이 필수적이다. 그것이야말로 일본의 반발을 일축시키는 특급전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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