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북·미 회담 이후의 동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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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북·미 회담 이후의 동북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6. 11.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해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외항에 정박하고 있는 수백 척의 대형 유조선과 화물선을 보면서 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평양과 판문점을 마다하고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하자고 고집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싱가포르에서 경제를 개방하면서도 권위주의적 통치를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이야기한 데서 보듯이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맞교환하는 정상 간의 빅딜이 성공한다면 종전선언, 불가침협정, 수교,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한반도와 동북아도 마침내 탈냉전시대로 들어갈 것이다. 따라서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동북아 질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미리 점검하는 것은 남북평화체제 구축 준비를 위해 필요하다.

 

첫째, 동북아는 ‘정치와 안보가 경제를 압도’(power over plenty)했던 냉전시대의 국제질서에서 ‘경제우선의 탈냉전질서’로 변모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국익우선주의와 김정은 위원장의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발전 총력노선으로의 전환이 결합하여 북·미 간 빅딜이 가능했다.

 

북·미 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집중노선의 성공을 가로막는 정치적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매진할 것이다. 주변국들의 대북투자와 교역을 막는 장애물인 미국의 대북제재를 풀게 하기 위해 완전한 비핵화를 북·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일정보다 빨리 해치울지 모른다.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북·일 수교와 납치자 문제에 대해 통 큰 양보를 할지 모른다. 대북제재를 풀어야 미국이 지배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중국이 지배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으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주변 경제강국인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으로 하여금 대북투자를 하도록 유인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둘째, 동북아 안보질서는 북·중·러 북방삼각동맹과 한·미·일 남방삼각동맹이 대치하는 이념에 기반한 적대적 동맹관계 구조에서 동북아 6개국이 평화이익에 따라 지역안보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육지, 바다, 하늘을 개방하면 주변국들에 엄청난 평화이익이 발생할 것이다. 부산에서 파리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면 한국과 일본은 물류에서 이익을 볼 것이고, 중국은 일대일로를 유라시아 대륙횡단철도와 연결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일대일로의 영역을 동북 3성과 한반도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시베리아 가스를 공급하는 가스관 라인을 북한을 거쳐 일본까지 연결하면 유럽철석탄공동체에 버금가는 지역에너지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개방으로 발생하는 평화이익이 3각동맹 간의 대치에서 발생하는 안보비용을 초과한다면 관련 당사국들은 평화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방지하고 집단적인 평화를 보장받기 위해 지역안보공동체를 발전시킬 유인을 갖게 될 것이다.

 

셋째, 종전선언은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김정은 위원장은 주한미군을 한반도 또는 동북아 평화유지군으로의 지위 변경을 통해 계속 주둔하기를 바랄지 모른다. 주한미군 주둔 용인은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이미 비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주한미군의 주둔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받아들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주둔 비용분담의 차원에서 보고 있는 듯하나,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이 대중국 억제에 있기 때문에 대중국 억제의 최전선인 남중국해에 미국의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동북아에서의 대중국 억지력으로서 주한미군의 가치를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돕는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를 카드로 제시할 수 있다는 친중국적인 키신저의 조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 화교들이 팍스 아메리카나 질서에 스스로 편입됨으로써 오늘의 번영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따라서 경제발전집중 노선의 성공은 미국 자본과 금융의 북한 유입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평양에 트럼프타워가 들어서고 맥도널드 가게가 문을 연다는 것 자체가 체제안전과 미국 자본 주도의 대외개방과 발전을 보장하는 상징이 될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광주과기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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