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트럼프 방한의 대차대조표와 과제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세상읽기]트럼프 방한의 대차대조표와 과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11. 2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8일 한국을 국빈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 국회연설도 했다. 트럼프가 방한 기간 동안 대북발언 수위를 방한 전보다 더 높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트럼프는 비교적 절제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사업가 출신 대통령답게 비싼 무기도 팔고 대미투자도 유치해 갔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지난 6월 회담과는 달리 문 대통령에게 선물도 주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마지막 날인 14일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에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아시아 순방 소감을 밝히고 있다. 서성일 기자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두 가지 중요한 말을 했다. “한국이 수십억달러의 미국 무기를 사기로 했다”는 것과 “미·북 간에 물밑대화를 해왔다. 지금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한국의 금년 국방예산이 400억달러 수준이고 그중 10% 정도를 미국산 무기 구매에 사용해 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항간에 나도는 70억달러설은 사실일 수 있다. 무기 구매로 엄청난 비용을 쓰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한 미국 무기는 어차피 사야 하는 것이고,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오려면 첨단 정찰자산도 구매해 둬야 한다. 일방적 손해는 아니고 사전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대북 압박·제재를 주장해 오던 트럼프가 한국에 와서 미·북 물밑대화를 시인했다. 어떤 맥락일까? 아마도 “압박·제재를 계속하더라도 북한이 대화로 나올 수 있는 퇴로는 열어둬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권고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의 북핵정책이 압박·제재에서 대화·협상 쪽으로도 나갈 수 있는 여지가 보였다. 8일 국회연설에서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자극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북한도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한두 번 반발하는 것에 그쳤다. 트럼프가 언급한 미·북 물밑접촉이 공식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을 북한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9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책임론’ 대신 미·중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의’가 강조되었다. 이는 미·중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2535억달러라는 거액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 주효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11일 베트남에서 “김정은과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며 미·북 대화 가능성을 더 열어놨다. 사실 미·북 물밑대화의 징후는 지난달 하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10월23일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강연에서 북 외무성 미국국장 최선희는 “북·미 간 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있다”고 했고, 30일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조지프 윤은 미 외교협회(CFR) 행사에서 “북한이 약 60일간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면 미국이 북한과 직접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방한 기간 중의 트럼프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9월15일 이후 지금까지 60일 이상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조용하다. 트럼프도 15일 ‘중대발표’에서 예상을 깨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지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이런 움직임이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방한 이후 전개되는 한반도 주변 상황을 볼 때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대화 쪽으로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7일 쑹타오 중국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시점에 맞춰 북한 제네바 대사가 중국의 제안인 ‘쌍중단’마저 거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건 중국이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시켜 주면 ‘쌍중단’으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아무튼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위기설’이 가라앉고 대화로 나갈 수 있는 국면이 전개되려 하는 건 다행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남북대화를 준비해야 하는데,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대화 재개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애착을 보이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스키경기 일부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북한 참가와 남북공동개최를 유도할 수 있다. 체육회담과 함께 내년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도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황재옥 | 한반도평화포럼 여성·청년위원장>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