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반도신경제가 유능한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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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시론]한반도신경제가 유능한 진보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9. 17.

“우리가 살길은 북쪽에 있다. 북한은 지하자원, 관광, 노동력 등에서 노다지와 같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우리가 덕 본다.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배상도 받는다. 북한에 ‘퍼주기’라고 하는데 ‘퍼오기’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륙 간 철도가 연결되면 물류비용이 30% 절약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태평양의 물류거점이 된다. 물류가 일어나면 경제가 일어난다. 이런 것은 북한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라시아 대륙이 노다지판과 같다. 길게 보면 이렇게 경제를 살려야 한다.”

 

10년 전이다. 2008년 11월2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의 면담에서 ‘북한은 노다지’라는 발언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 비판했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신병자로 몰아붙였고, 보수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탁견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출처:경향신문DB

 

민족의 회복은 어디에서 오나. 경제다. 민족의 번영은 어디에서 오나. 그 역시 경제다. 한때는 분단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상대를 패망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역설적으로 북한이 망하더라도 남한만 잘살면 된다는 사고도 지배했다. 박근혜 정권기에는 북한 급변론(멸망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상황이 전변했다.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 센토사 합의가 그것이고, 향후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선언 이후 벌어질 새로운 지평이 있어서다.

 

한국경제는 성장판이 닫혔다. 박정희 경제패러다임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워싱턴 컨센서스와의 조합은 더더욱 한국경제를 수렁으로 빠져들게 했다. 낡은 성장제일주의와 정경유착, 탐욕의 자유와 노동인권 말살, 저성장과 양극화는 대한민국 경제를 구조적 위기로 몰아넣었다. 과연 한국경제의 탈출구, 새로운 성장의 기회는 무엇인가?

2007년 10월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이 발표되었다. 10·4는 다르다. 6·15선언을 이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경제협력 단계로 나아가는 로드맵을 합의했다. 선언 발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장 핵심적 성과로 새로운 경제협력사업을 꼽은 바 있다. 민족경제의 목표와 운영원칙을 합의한 것은 10·4선언의 중요한 성과였다. 10·4선언의 다양한 경제협력 방안은 남북 간 단순 교역 증가가 아닌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위상과 폭이 대폭 강화되었다.

 

2018년 4월27일, 남북의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번영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천명했다. 무엇보다도 판문점선언의 의의는 ‘평화번영을 향한 연합적 거버넌스’를 제창한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신경제는 다르다. 평화체제 없는 긴장완화형 경협이 아니고 흡수통합형 경협도 아니다.

 

한반도신경제는 네가지 개념축이 상호작용한다. 먼저 ‘평화’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안정 확보,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체제 안정 보장,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 및 해소는 경제를 위한 안전판이다. 둘째 ‘자주’다. 미국과 중국의 입김에 의존하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평화가 아니라, 남북한이 직접 평화와 경제를 경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공영’이다.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북한경제 발전 과정에서 남한경제도 발전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넷째 ‘번영’이다. 북한이라는 경제 블랙홀이 사라지면, 작게는 동북아시아 경제협력이 크게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자리하게 된다. 여기에 한국경제의 일대 도약의 기회가 있다.

 

EU의 발단이 독일이 제창한 ‘석탄공동체’였다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발단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창한 ‘철도공동체’가 될 것이다. 1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라시아 대륙은 노다지판’이라고 내다본 것처럼 말이다. 6·15가 통일에 이르는 과도적 단계를 논했다. 10·4는 남북 경제공동체를 논했다. 4·27은 한반도신경제를 통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논하고 있다. 이것이 유능한 진보의 진일보다.

 

<최민식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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