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제3정당 실험이 반복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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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아침을 열며]제3정당 실험이 반복되는 이유

by 경향글로벌칼럼 2022. 8. 1.

숫자 3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안정이나 완전함을 상징한다. 주역의 정(鼎) 괘는 세발솥을 의미하는데, 이 솥은 세 개의 다리가 안정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국가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한다. 성서에서도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를 말한다. 3은 신화에서도 공통으로 등장한다. 게르만 신화에서 최초의 신들은 오딘, 빌리, 벨 삼형제다. 힌두 신화에서는 브라마, 비슈누, 시바 등 3대 주신이 있다. 정치에서도 3은 변화와 완전함의 추구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때가 많다. 제3정당이 대표적이다. 양당 제도가 굳어진 미국에서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제3정당 운동으로 나타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데이비드 졸리 전 공화당 하원의원, 크리스틴 휘트먼 전 뉴저지 공화당 주지사,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앤드루 양은 지난 27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전진당(Forward Party)’이란 이름의 제3정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당면한 미국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좌파도 우파도 아닌 전진”에서 찾겠다고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행태에 염증을 느끼는 시민들을 모아 제3지대 중도정당을 창당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제3정당 실험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양당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제3정당 운동은 반복되고 있지만 성공 사례는 찾기 어렵다. 억만장자 로스 페로는 1992년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18.87%를 득표하며 바람을 일으켰다.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표가 몰렸다. 페로는 개혁당을 창당해 1996년 대선에 다시 도전했지만 8.40%를 얻는 데 그쳤다. 두 번 모두 공화당의 표를 분산시키며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에 도움을 준 꼴이 됐다. 그는 결국 미국 정치에서 분열의 상징처럼 남게 됐다. 반대로 랠프 네이더 녹색당 후보는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표를 잠식하며 결과적으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승리에 일등공신이 됐다.

전진당 뉴스에서 주목할 부분은 또 한 번의 제3정당 실험을 추동하고 있는 미국 유권자들의 갑갑함이다. 무능력한 조 바이든 정부가 실망스럽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 원칙마저 무시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을 용인할 수는 없고, 반대로 친트럼프 인사들로 넘쳐나는 공화당은 싫지만 그렇다고 말만 번지르르하고 민생에 무능한 민주당을 지지할 수도 없는 답답함이다. 지난 2월 갤럽 여론조사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일을 너무 못해서 제3당이 필요하다’는 항목에 응답자의 62%가 찬성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와중에 미국 정치는 극단적인 당파주의로 인해 자석의 N과 S극처럼 갈라져 있고, 의회는 타협을 포기한 채 의석 싸움만 하고 있다. 버나드 타마스 발도스타주립대 교수는 <미국 제3정당의 소멸과 재탄생>을 통해 미국에서 제3정당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될 때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양극화는 어느 당도 중간 지대에 있는 시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진당 뉴스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도저히 표 줄 정당이 없다’며 답답해하는 시민이 즐비했다. 제3정당 시도가 이어졌지만 제대로 뿌리내린 정당이 없는 것도 비슷하다. 김종필 전 총리가 충청을 기반으로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내걸고 17대 총선에서 10석을 얻으며 바람을 일으킨 민주노동당은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했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정의당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10년간 제3지대 정당을 추구하던 안철수 의원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는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창당해 38석을 배출하며 정점에 오르기도 했지만 ‘철수 정치’를 거듭하더니 지난 대선에서 마지막 철수를 하며 국민의힘 품에 안겼다.

‘오징어게임’식 승자독식 선거제도 역시 한국과 미국의 공통점이다. 승자독식 제도가 2017년 네덜란드 총선에서 ‘동물을 위한 정당’이 3.2% 득표로 5석 원내정당이 된 것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없도록 차단벽을 치고 있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이 양당제 극복을 위한 첫걸음으로 꼽히는 이유다.

정치적 양극화 시대에 거대 양당을 견제하며 중도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똘똘한 제3정당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시간이 지나면 선거의 계절은 또 돌아올 것이고 미국처럼 한국에서도 제3정당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또 실망할지 모르지만 그때도 박수를 보낼 생각이다.



박영환 국제부장



 

연재 | 아침을 열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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