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트럼프, 셧다운, 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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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트럼프, 셧다운, 다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 22.

활짝 웃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왼쪽에서 나타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흑백 이미지를 가리기 시작한다. 트럼프가 오바마를 완전히 가리자 ‘사상 최고의 일식(The Best Eclipse Ever!)’이란 자막이 뜬다. 지난해 8월24일(현지시간)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리트윗한 4장의 연속사진이다. 당시 미 언론들은 트럼프가 이틀 전(8월22일) 애리조나주 연설에서 강성 발언을 쏟아낸 뒤 만들어진 사진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애리조나주 연설은 이렇다.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위해서라면 연방정부를 셧다운(일시폐쇄)할 수도 있다.”

 

트럼프가 취임 1년을 맞은 20일, 그의 공언대로 연방정부가 셧다운됐다. 1년 내내 ‘오바마 지우기’에 열중해온 트럼프가 이번에는 오바마 재임 시 연방정부 셧다운을 재현한 건가. 뜯어보면 다르다. 2013년 10월에는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과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이 대립하다 예산안 통과에 실패했다. 이번에는 상·하원 모두 여당인 공화당이 지배하는데도 셧다운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셧다운을 앞두고 실시된 ABC방송·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서 ‘어느 쪽에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48%가 ‘트럼프와 공화당’을 꼽았다. 의회전문 매체 더힐은 ‘트럼프셧다운’ 해시태그(#TrumpShutdown)가 전 세계적으로 검색어 최상위에 올랐다고 전했다.

 

여론 흐름이 트럼프에 불리한 데는 또 다른 요인도 있을 터다. 이번 사태의 쟁점은 ‘다카(DACA)’다. 다카는 오바마가 내린 행정명령으로, 부모를 따라 미국에 불법 입국한 청소년들의 추방을 유예하고 노동허가증을 발급해주는 정책이다. 트럼프가 폐기를 선언하면서, 불법 체류 청소년 약 80만명이 추방 위기에 놓였다. 민주당은 다카의 부활에 준하는 보완입법을 요구한 반면, 공화당은 이를 거부하고 트럼프는 멕시코 장벽 건설 예산을 반영해야 한다고 맞섰다. 지난해 8월 NBC 여론조사에선 64%가 다카 유지 쪽에 손을 들었다. 2017년 미국인들이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도 ‘다카’였다. 전임자의 자취는 이어받을 수도 있고 지울 수도 있다. 하지만 주권자의 뜻을 외면했다간 큰코다친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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