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자 무솔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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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 여자 무솔리니

by 경향글로벌칼럼 2022. 9. 27.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l)의 대표이자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조르자 멜로니가 26일(현지시간) 로마의 Fdl 본부에서 연설한 뒤 ‘고마워요. 이탈리아’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로마 | AFP연합뉴스

파시즘은 이탈리아에서 싹텄다. 파쇼(fascio)의 말뿌리도 이탈리아어(묶음·단결)다. 1차 세계대전 후 극심한 사회갈등에 넌더리가 난 이탈리아 민심을 간파한 베니토 무솔리니가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1922년 검은 셔츠단을 이끌고 ‘로마 진군’ 쿠데타를 일으켜 20년 이상 극우 독재를 했다. 두체(Il Duce·지도자)로 불리던 그는 1945년 민중에 의해 처형됐지만, 독일과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역사청산이 이뤄지지 않았다.

명맥을 유지하던 이탈리아 파시즘이 ‘로마 진군’ 100년 만에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25일(현지시간) 조기총선에서 우파 연합이 승리하면서, 별명이 ‘여자 무솔리니’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l) 대표가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로 유력시된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그는 열다섯 살 때 네오파시스트 정치단체에 가입하고 스물한 살에 지방선거 첫 승리 이후 유모와 식당 종업원으로 생계를 꾸리며 정치경력을 쌓았다고 한다. 과거 “무솔리니는 훌륭한 정치가”라고 발언했던 그는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이탈리아”를 지향하며 반이민주의와 동성애 반대를 내걸었다. 변방의 극우세력이 유로존 3위 경제대국의 주류가 된 것이다.

유럽 내 ‘극우의 정상화’는 확연하다. 사민주의 전통이 깊은 스웨덴 총선에서 네오나치 기반의 스웨덴민주당이 원내 2당 자리를 꿰찼다. 프랑스에서는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이 지난 4월 대선 결선투표에 진출한 데 이어 6월 총선에서 우파 간판정당에 올랐다. 파시즘 트라우마가 깊은 독일에서도 2017년 극우정당(AfD)이 연방의회에 진출한 바 있다. 세계화로 인한 일자리 증발과 소득 감소에 무방비로 노출된 저학력 노동계급이 신자유주의 체제를 주도해온 기존 정치엘리트를 불신한 결과가 하나의 흐름을 이룬 것이다. 이민인구 증가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활고도 이유로 꼽힌다. 사회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은 극우정당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제 유럽연합(EU) 공동체는 시험대에 올랐다. 경제성장이 충분해야 불만을 잠재울 수 있겠으나 묘수가 안 보인다. 푸틴의 러시아를 견제할 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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