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미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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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일본의 ‘#미투’를 응원한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1. 23.

지난해를 상징하는 말로 ‘#미투(MeToo)’를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의 거물 하비 웨인스타인에 대한 폭로를 시작으로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들이 잇따랐다. 이것이 ‘#미투’ 운동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졌다. 한국도 지난해 1월 서지현 검사 이후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피해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해 ‘신조어·유행어 톱 10’에 ‘#미투(MeToo)’가 포함됐다. 하지만 상황은 좀 달랐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가 2017년 5월 유명 방송기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지만 반향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18일 일본 도쿄 시모기타자와 B&B서점에서 열린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북 토크에서 이 책을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오른쪽)와 서평가 구라모토 사오리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진우 기자

 

지난해 4월엔 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여기자에게) 속아넘어간 게 아니냐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등의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아베 신조 정부는 아소 부총리의 발언을 뒷받침하듯 각의(국무회의)에서 “성희롱으로 처벌하는 취지를 규정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서를 결정했다. 지난 9일 인터넷 투표에선 ‘2018년 최악의 성차별 발언을 한 정치인’으로 아소 부총리가 선정됐다.

 

그렇게 2019년이 시작된 지 3주일, ‘#미투’ 사안이라고 부를 만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우선 남성용 잡지 ‘주간SPA!’의 ‘성관계 쉬운 여대생 순위’ 논란. 후지산케이그룹 산하로 보수 성향의 후쇼샤(扶桑社)가 출판하는 ‘주간SPA!’는 지난달 25일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성관계하기 쉬운 여학생들이 많은 여자대학 5곳의 순위를 실었다. 이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준강간죄를 조장한다” “여성 경시다” 등의 비난이 빗발쳤다. ‘여성을 경시한 잡지 출판을 멈추고 사과하라’는 제목의 온라인 서명에는 5만명 가까이가 참여했다. ‘주간SPA!’ 편집부는 결국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친밀해지기 쉬운’이라고 표현해야 할 부분에 선정적인 단어를 쓰게 됐다” 등의 해명이 더욱 비난을 불렀다.

 

또 하나는 여자 아이돌그룹 멤버 피습 사건. NGT48의 야마구치 마호가 지난 8일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자택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받은 사실과 함께 소속사가 한 달간 아무런 대처도 없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지난 10일 팬미팅에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고개 숙인 것은 야마구치였다. 폭력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공포를 눈물로 호소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도 모자라, 소속사는 피해자가 사과하도록 해 사태를 서둘러 수습하려 한 것이다.

 

이번 사건을 대하는 ‘남성’들의 대응은 한술 더 떴다. 일본의 유명 개그맨 마쓰모토 히토시는 후지TV의 한 프로그램에서 NGT48과 자매그룹인 HKT48의 사시하라 리노가 대책을 호소하자 “그건 자신 있는 몸을 사용해 어떻게 해보든지”라고 말했다. 여성이 출세하기 위해 ‘성’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편견을 여과 없이 노출한 것이다. 이런 차별적 발언을 후지TV에선 편집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보냈다.

 

해가 바뀌어도 일본 사회가 남성 중심의 철옹성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일 소설 <82년생 김지영> 일본어판 간행 기념 행사에서 서평가 구라모토 사오리는 “1980년대 얘기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변하지 않는 일본의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인터넷 서명운동과 면담을 통해 ‘주간SPA!’의 사과를 이끌어낸 것은 야마모토 가즈나 등 여대생들이었다. ‘조직과 사회의 조화’ 등의 명목 아래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 당당히 맞서는 젊은 세대들이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내건 ‘여성이 빛나는 사회’라는 구호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 허상에 분노를 표현하고, 연대하고, 현실을 바꾸려는 누군가가 있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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