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드레스덴 선언 1주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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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드레스덴 선언 1주년에 부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3. 26.

박근혜 정부가 대북 제안인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한 지 내일이면 1주년이다. 2014년 3월28일 박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발표한 드레스덴 선언은 남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한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제안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통일부는 드레스덴 선언 1주년을 맞아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시야에서 남북관계 상황을 봐 가며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차근차근 이행을 추진해 왔다’고 했다. 통일부의 자평은 언뜻 보면 그럴싸하나, 실제로는 아무 성과도 없었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통일부의 입장에서 보듯, 드레스덴 선언에 담긴 제안들은 북한의 싸늘한 반응 속에 거의 대부분 추진되지 못하고 여전히 보따리 속에 놓여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인도적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놓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은 전혀 진전이 없다.

유엔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에 1330만달러를 지원하고, 민간단체의 영양식 등 26억원 상당의 대북 지원을 승인하는 정도가 대북지원의 전부였다. 나진~하산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현장 실사와 시범 운송 한 차례,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 개성 만월대 발굴사업 등 남북 문화유산 공동복원 정도가 지난 1년간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전부였다.

통일부는 드레스덴 선언에 담긴 10가지 대북 제안 중 인도적 지원 확대와 나진~하산 프로젝트와 같은 남·북·러 3각 협력, 민간 접촉 확대,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 인력 경제 교육 등 4가지만 진행 중이라 분석하고 있다. 나머지 제안들은 여전히 내부 준비나 추진 모색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의 연장선상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드레스덴 선언이 현재까지도 준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이 사태는 예견된 것이었다. 드레스덴 선언 시점과 제안 방식, 내용 자체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2014년 3월, 당시 남북관계는 북한의 키리졸브 훈련에 대한 강한 불만이 표출되는 시점이었다. 상호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드레스덴 선언은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이었다.

선언에 담긴 보따리도 북한이 혹할 선물 보따리는 아니었다. 북한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한 금강산관광 재개 등 현안을 담은 보따리라기보다는 북한이 불편해하고, 시급하지 않은 것들을 중심으로 나열된 것이었다. 북한에 대한 적극적 고려 없이 박 대통령의 원칙, 박근혜 정부가 갖고 있는 기준에 따른 보따리였던 것이다. 그러니 메아리 없는, 울림 없는 일방적 선언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드레스덴 선언이 주는 교훈은 자신의 기준과 잣대만으로 일방적인 대북정책을 끌고 가서는 실제 성과가 안 나온다는 것이다.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남북이 상대방의 제안을 경청하고 충분한 대화 속에 상호 간 화답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 임기 5년, 박근혜 정부 임기 2년 동안 남북 당국은 자기 식대로 상대방을 끌고 가는 샅바싸움에만 열중했다. 상호 간 끌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평행선상에 있었다. 어느 일방이 상대방을 끌고만 가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강압’이자, ‘억지’다. 그것이 단기 전술이 될 수는 있으나, 장기 전략으론 성공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해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 연설을 한 뒤 참석자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고 있다. _ 연합뉴스


광복 70주년, 지금 시점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9일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거행되는 리콴유 전 총리의 국장에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현지에서 남북한 당국 간 공식, 비공식 접촉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북한 박봉주 내각총리가 리 전 총리 서거를 애도하는 조전을 리셴룽 현 총리에게 보낸 것과 관련해 북한 주요 인사의 장례식 참석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한은 싱가포르와 1975년 수교를 맺어 대사관을 두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0월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 접촉이 이뤄지기도 했다. 싱가포르에서 남북한 당국자 간 접촉이 이뤄진다면, 그것은 현재의 강대강(强對强) 대결구도를 해소하는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접촉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집권 3년차, 박근혜 정부가 대북정책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김용현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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