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차별금지·기후 대처는 ‘G10’의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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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미국 대선 일기

[정동칼럼]차별금지·기후 대처는 ‘G10’의 토대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7. 6.

조 바이든이 11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세상은 다시 과거의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이미 시대는 너무 변해버렸다. 얼마 전 트럼프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을 초대한 걸 두고 일각에서는 트럼프 특유의 즉흥 제안이라고 한다. 천만에. 지금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주류들은 국제질서를 서구 자유주의 대 중국 권위주의 동맹의 대결로 재편하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과거 빌 클린턴의 멘토인 에치오니의 꿈이 드디어 민주당과 공화당의 민공 합작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두 ‘문명’ 간의 이분법적 대결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라는 새로운 균형자 모델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균형자?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입 밖에 꺼냈다가 당시 주류 사회에서 엄청난 조롱을 받은 개념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서구 지성들은 중국식 권위주의로 전락하지 않으면서도 지금까지는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룬 대한민국의 새 균형 모델에 관심이 많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믿어온 자유와 평등 개념이 다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방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 정의론의 영역이다. 가치 담론에서 새 질서를 선도하는 이는 기존 균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

 

물론 미·중 사이 이분법적 대결의 틈바구니란 고달프다. 하지만 한반도 역사상, 한국이 미래 국제 모델로의 가능성으로 부상한 사건은 전무후무하다. 단 새로운 보편과 균형자가 되기 위해서는 근대 시기에 이루지 못했던 숙제와 탈근대 시대의 새 과제를 완료해야만 일단 출입증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차별금지와 진정성 있는 기후위기 극복 말이다.

 

근대적 냉전 시절, 차별금지법은 보편을 주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증이었다. 즉 미국은 구소련과의 이념 경쟁에서 승리를 위해 민권법 통과에 사활을 걸었다. 사실 헌법에 흑인의 법적 가치를 ‘백인의 5분의 3’으로 기록했던 나라에서 어떻게 소비에트의 인권탄압을 비난할 수 있었겠는가?

 

대한민국도 이제 새로운 보편 진입을 위한 리트머스 테스트 앞에 있다. 새천년 세대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586 민주화 운동의 상징 권인숙 민주당 의원 등이 우리에게 숙제를 부과했다. 그들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공동 발의는 이제 한국도 ‘정상 국가’로 진입하는 입구에 막 들어섰다는 의미이다.

 

탈근대 ‘신냉전’ 시대, 생태 감수성은 보편을 위한 새로운 자격증이다. 과거 루스벨트는 뉴딜과 마셜 플랜으로 레닌을 KO 시켰다. 오늘날 미국 주류 사회는 지구적 그린 뉴딜과 양적 완화로 시진핑을 극복하려 한다. 사실 기후악당인 트럼프 정부가 어떻게 생태문명을 헌법에 집어넣은 시진핑과의 체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오랜 기간 생태운동을 전개한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의 탄소감축 인지 예산 제도는 대한민국의 새 자격증 시험이다. 이는 앞으로 실질적 탄소감축이란 관점에서 모든 정부 예산을 평가하고 감독하는 구상이다. 한국이 길게는 북한까지 포함하는 아시아 생명 정치 공동체(Biocracy)의 담대한 미래를 선도할 첫 포석이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합의하는 새로운 보편 비전은 ‘포용적(포괄적) 민주주의(Inclusive Democracy)’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소 이 비전에 관심이 매우 크다. 나는 문재인 행정부와 의회가 이 국제사회의 공통 가치를 한 차원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문재인의 ‘글로벌 포용 민주주의론’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포괄적 차별금지의 가치가 포용 민주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라면 탄소감축을 비롯한 생태는 새로운 차원으로의 사상 진화이다. 포용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의 다양한 주체들까지 대상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김상조 실장과 민주당 이해찬 대표, 그리고 김태년 원내대표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대통령의 지구적 포용 민주주의 비전을 구현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G10으로 초대받고 경제 돌파구의 기회를 여는 것은 원래 보수의 어젠다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차별과 기후위기에 민감한 독일 메르켈 총리 같은 걸출한 보수 대선 후보가 없을까? 독일 사회의 탁월함을 가장 잘 이해하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대표와 유연한 정치가인 주호영 원내대표의 다음 화두가 포괄적 차별금지와 기후위기 긴급대처이길 기대한다.

 

아직 그림자가 많지만 K방역은 새로운 보편으로의 첫 돌파구를 열었다. 이제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탄소감축 인지 예산 제도 통과로 새로운 흐름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다음번 문 대통령의 평양 연설이나 미 상·하원 합동연설은 글로벌 포용(포괄) 민주주의가 어떨까?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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