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난감한 이웃, 일본과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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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난감한 이웃, 일본과 살아가기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12. 8.

한·일 양국은 미래지향적 관계를 얘기하면서도 과거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국 관계에 대해 제2기 아베 정권은 취임 후 첫 시정연설에서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규정했고, 2014년 같은 규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5년에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만 남았고, 2016년과 2017년에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가 되었다. 2018년에는 “미래지향적으로 협력관계”만 언급됐고, 2019년에는 아예 말이 없었다. 2020년에는 ‘원래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일본 정부가 제멋대로 내린 규정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일본에 구원(舊怨)이 있지만 지리적 조건 때문에 무시하며 살 수도 없어 난감한 이웃임은 틀림없다. 한·일 간의 국력격차가 현격히 좁혀졌고 민주주의나 언론자유 면에선 오히려 한국이 앞섰고 한·일관계의 걸림돌이었던 아베 총리가 퇴진한 지금이 양국 관계를 개선할 좋은 기회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축하 통화에서 신임 스가 총리도 “양국은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며 한·일 협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지난 11월3일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서 한·일 간에는 관계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11월 초 박지원 국정원장에 이어 한·일 의원연맹 의원단이 일본을 방문해 협력 재개를 모색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해결책은 마련되지 못했으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는 것은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악화된 한·일관계를 다시 봉합하고 협력을 재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도쿄 하계올림픽에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스포츠축제를 계기로 양국 관계를 회복하고 동아시아의 평화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유엔은 올림픽에 앞선 7일, 패럴림픽 종료 후 7일 사이에 ‘올림픽 휴전’을 선포해 전쟁이나 테러 등 과격한 폭력의 자제를 결의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평창 올림픽, 도쿄 올림픽, 베이징 올림픽을 차례로 개최하는 한·일·중 3개국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둘째,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 핵 문제의 해결에 협력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 문제는 미국이나 중국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다. 비록 일본이 6자회담에서 의제 외의 요구로 비핵화 협상을 어렵게 한 적이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가 한·일 공동안보의 목표라는 점에서 협력 필요성이 있다.

 

셋째, 한·일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미·중 갈등에서 완충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일관계가 악화되면 대미 구애 경쟁에 휘말려 미·중 대립구도에 끌려가게 될 위험이 있다. 한·일 양국이 완충역할을 하지 않고 ‘동맹의 연루 딜레마’에 빠지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기약할 수 없다.

 

한·일 협력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갈등의 직접원인이 된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피해자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하든 정리하고 넘어가야만 한다. 두 문제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빠져있는 바람에 그동안 정부 차원의 타협이 몇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왔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아닌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 원로들이 직접 중재역할에 나설 필요가 있다.

 

작년 2월 일본 시민지식인 266명이 2010년 2월의 ‘간 나오토 담화’에 기초해 일본의 거듭된 사죄와 반성을 토대로 한·일관계를 복원하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간 나오토 담화’는 병합의 불법성을 명시하지 않아 최종적인 해법으로는 한계가 있으나,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 및 그에 따른 손해와 아픔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담은 것이라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었다.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의 경우, ‘간 나오토 담화’의 정신에 기초해 일본 전범기업들이 강제 동원된 한국 노동자들의 피해에 대해 사죄하는 타협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현금화 문제를 본래의 민사소송 영역으로 되돌림으로써 한·일 양국 간 외교 문제에서 일단 벗어나게 해야 할 것이다. 민사소송 차원의 당사자 간 문제는 양국 정부가 자국민·기업을 상대로 해결을 모색하는 방안이다.

 

현재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를 풀 수 있는 명쾌한 해법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더 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양국 정치권에서 합의하고 시민사회의 지식인들이 나선다면 당면한 갈등을 어느 정도 봉합할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을 통해 한·일 협력의 길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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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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