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과 창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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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창업과 창의성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11. 13.

린즈룽(林志龍·35)은 2011년 중국 최고 예술대학으로 꼽히는 ‘중국미술학원’을 졸업했다. 학과 성적도 우수했다. 웬만한 회사는 골라서 갈 수 있는 ‘스펙’이었다.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대학 은사가 자신이 만든 회사로 스카우트했다. 


대우는 좋았다. 그러나 회사 업무는 상사 요구에 따라 ‘납품’하는 것일 뿐, 스스로의 생각과 능력을 충분히 발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창업욕이 정비례로 증가했다.


린즈룽을 주인공으로 한 중국 바링허우(80後·80년대생)의 평범한 창업 스토리는 항저우라는 도시와 만나면서 좀 특별해진다.


창업 의지가 커지던 시기에 중국미술학원이 위치한 항저우에 즈장(之江)문화창업단지가 들어섰다. 졸업 후 5년 내 창업하면 3년간 사무실 임대료 면제, 세금 우대 등 각종 혜택을 줬다. 무엇보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의 교류 협력으로 회사의 프로젝트를 알릴 수 있었던 게 도움이 됐다. 그가 세운 회사는 2016년 항저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LED 조명쇼를 맡으면서 전환점을 맞았고, 연매출 17억원의 회사로 커졌다. 항저우에서 만난 린즈룽은 “항저우는 빼어난 자연 환경을 가진 관광도시로 중공업·제조업에 의존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며 “50개 가까운 대학에서 풍부한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는 점도 창업 도시로서 최적화된 조건”이라고 했다.


지방정부의 지원 정책, 풍부한 고급인력이 바탕이 됐지만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창의성일 것이다.


지난 9일 찾아간 중국미술학원 샹산(象山)캠퍼스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건축 전시장 같았다. 위치와 모양이 제각각인 창문들, 대나무로 만든 난간과 기왓장은 주변 산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샹산캠퍼스를 설계한 건축가 왕슈(王樹)는 철거지역의 전통가옥에서 나온 기와 200만장으로 건물의 지붕을 덮었다고 한다. 지역성과 역사성을 품은 이 캠퍼스에서 학생들은 한계 없는 상상력을 펼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알리바바그룹은 항저우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중국 기업이다.


1년 중 알리바바가 가장 분주한 시기는 광군제(11·11) 전후다. 10일과 11일 방문한 알리바바 본사 단지는 야근과 업무에 지친 모습보다는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입구에는 행사 ‘승리’를 기원하는 정승고(定勝鼓)가 놓여졌다. 전날에는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로, 당일에는 새 기록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북소리가 울렸다.


본사 단지 곳곳과 직원들의 책상에는 보리가 놓여졌다. 중국어로 보리(大麥)라는 뜻의 ‘따마이’는 많이 판다(大賣)는 단어와 발음이 같다. 또 수확을 상징하기도 한다.


붉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여기저기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승리 기원 체조를 하면서 ‘일폭탄’ 행사를 하나의 축제처럼 즐겼다. 화장실에는 크리스마스트리 모양 안에 자아돌파, 필승 같은 글귀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분명히 새로운 실적을 달성해야 하는 도전이지만, 이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돌파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알리바바는 연애편지 대신 써주기, 사과 대행, 애인 대행 같은 이색 서비스를 판매하면서 주목받았다. 매출도 중요한 목표지만, 재미를 추구한다.


10일 항저우에서는 ‘국제인재교류 및 프로젝트 협력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를 계기로 저장(浙江)성 최초의 창업실패보험이 시작됐다. 이 보험에 들면 창업에 실패한 이에게는 최대 3만위안의 생활자금 보조금을 제공한다. 전체 보장한도는 1000만위안에 달한다. 창업 지원뿐 아니라 안전장치까지 해주는 셈이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하늘 아래엔 항저우와 쑤저우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여유로움과 매력이 있는 도시로 유명한 항저우가 창업의 천당으로 자리매김할 분위기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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