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미국의 ‘개학 준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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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특파원 칼럼

[특파원 칼럼]미국의 ‘개학 준비법’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7. 15.

이틀 남았다. 미국 수도 워싱턴과 인접한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 산하 공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9월 초 시작되는 새 학년 새 학기에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받을지 선택하기 위해 남은 시간이다. 주 이틀 학교 등교 수업 또는 주 나흘 온라인 수업 중에서 골라야 한다. 한번 선택하면 학년을 마칠 때까지 1년간 바꿀 수 없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니 코로나19가 걱정이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만 듣게 하자니 학업과 스트레스가 걱정이다.

 

페어팩스의 개학 방안이 지난주 미국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학교가 정상적으로 개학해야 한다고 주지사들을 압박하고 나서자, 벳시 디보스 교육부 장관이 페어팩스를 콕 집어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디보스 장관은 모든 학교는 주 5일 대면 수업을 목표로 준비해야 한다면서 “페어팩스의 계획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을 충실히 따르는 난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플로리다주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사람 5명 가운데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을 정도로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고 있음에도 주 내 모든 학교에 주 5일 등교를 전제로 개학 계획을 마련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리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모든 학생이 정상적으로 등교해 수업과 과외활동에 참가하는 것이 학업·심리발달·복지 등 모든 면에서 바람직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다. 자녀가 학교에 가지 않으면 부모들도 집에 발이 묶이기 때문에 경제 정상화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 등의 ‘압박’이 무모해 보이는 것은 이들이 적잖은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교직원, 학부모의 안전이다.

 

트럼프 대통령 등은 저연령층의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중국을 비롯해 각국에서 저연령층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저연령층 감염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학교들이 일찌감치 휴교를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학생 자신이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더라도 바이러스를 부모에게 전파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그리고 교직원들은 저연령층이 아니다.

 

스콧 브라브랜드 페어팩스 교육감은 디보스 장관의 비판에 기존 학교는 학생 간 거리를 약 46㎝(18인치)로 계산해 학생들을 수용하고 있다면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권고한 1.8m(6피트)를 유지하려면 페어팩스에만 200개의 학교가 더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페어팩스에서만 미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 5개 크기의 공간이 새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 건물만 문제가 아니다. 교직원과 스쿨버스도 늘어나야 한다. 마스크 등 개인보호 장비도 조달해야 한다.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고,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우리는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세계를 매일 보고 경험한다. 상당 기간 코로나19의 위험과 함께 사는 것이 ‘뉴노멀’이 됐다는 소리도 듣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익숙했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강요받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확인된 통계로만 인구 100명 중 1명이 코로나19에 걸린 미국에서 새 학기 개학을 준비하면서 겪는 혼란과 고통은 이제 시작에 불과해 보인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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