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부유세, 위헌 판정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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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부유세, 위헌 판정 그 이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 8.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75%의 부유세 때문에, 몇몇 부자들이 벨기에로, 러시아로 허둥거리는 광경이 신문지면을 어지럽게 메우는 동안, 헌법재판소에서는 부유세에 위헌판결을 내렸다. 올랑드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닥쳐온 것이다. 대선 후보 시절, 올랑드는 바로 이 공약으로 간신히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20%까지 추격해 오는 좌파전선의 멜랑숑을 결국 11%의 지지율로 잠재우고, 좌파들의 표를 낚아올 수 있었던 데는 계급적 이해를 분명히 반영한 75% 부유세 덕이 지대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가 밀가루 세례를 받고 있다. (경향신문DB)


어마어마한 폭탄처럼 보이는 75% 부유세의 진실을 이 대목에서 한번 짚고 가자. 이는 연소득 100만유로(약 14억원) 이상 되는 사람들이 100만유로를 넘어서는 초과소득에 대해 75%의 세금을 내는 것을 말한다. 120만유로를 번 사람은 20만유로에 대해서 부유세를 낸다. 과세 대상자는 1500명 선. 이들이 내야 하는 평균 세액은 14만유로(약 2억원)다. 정부가 올해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재정이 200억유로(280조원)임을 감안할 때, 이 극소수 최상류층이 담당해야 하는 몫은 오히려 미미한 편이다.


헌재 판결에 따른 타격은 오히려 정치적인 면에 있다. 부유세는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며, 사회당의 핵심과제다. 올랑드는 이를 기화로 국정운영에 탄력을 실어 본격적인 올랑드식 정치를 전개하려 했다. 그런데 헌재가 이를 저지하면서 큰 걸림돌을 만나게 된 것이다. 헌재가 위헌 판결을 내린 공식 이유는 기존의 소득세 과세기준이 가구당이었는데, 이 부유세는 개인당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건데, 그야말로 어쭙잖은 변명이다.


9명으로 구성된 이 헌재 판사 전원은 사르코지와 시라크 시절에 임명된 자들로, 이들은 금융소득, 고가의 부동산 등 최상류층의 자산을 건드리는 모든 과세에 대해 일관되게 위헌 판정을 내려왔다. 이 판정은 법리에 의해서라기보다 정치적인 것이라는 평가가 설득력을 갖는다.


헌법재판소가 민심과 국회, 대통령의 뜻을 배반하는 사법 테러를 벌이자, 몇몇 언론들은 헌재 개혁을 주장하는 강한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에로 총리는 헌재의 판결에 대해 조만간 새로운 형태의 법안을 다시 상정할 것이며, 형식은 달라지더라도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을 것임을 밝히며,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지금의 헌재가 버티고 있는 한, 이들을 거스르는 모든 시도는 무력화될 수 있기에, 헌재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힘을 얻는다.


다행히도 9년 임기의 헌재 판사 중 3명이 2월에 임기를 마감하여, 사회당 측은 3명을 새로 임명할 수 있지만 이것으론 충분치 않다. 당장, 올랑드는 지난 월요일, 헌재 관련 법개정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천명했다. 특히 전직 대통령이 9명의 헌재 판사들 외에 종신 멤버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현재 헌재에는 사르코지와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이 멤버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드파르디외는? 헌재가 부유세 위헌 판정을 내리던 날, 그는 벨기에로 귀화하기로 한 결정에 변함이 없음을 밝힌다. 그러다 며칠 뒤 푸틴이 러시아 여권을 높이 흔들자, 그에게로 날아가 안기며 국빈 대접을 받고. 코끼리 두 마리를 살리지 않으면 나도 러시아로 간다고 협박하는 브리지트 바르도의 가세로, 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웃기에도 민망한 형편없는 촌극, 경제인연합(Medef) 총재 로랑스 파리소의 표현에 따르면 “개인의 비극적 이야기”로 전락했다. 오히려 드파르디외가 일으킨 유난스러운 파문은 벨기에 정부로 하여금 세금회피 망명자들에 대한 엄중한 심사를 하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그보다 앞서 귀화심사를 받은 루이뷔통사 사장은 뜻밖에도 부정적 결과를 통고받는다. 전화위복이다. 헌재와의 힘겨운 싸움에 나선 권력. 헌재를 이기는 힘은 오직 무서운 민심뿐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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