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이 위안부 문제의 전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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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이 위안부 문제의 전부인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6. 17.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 해도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인가. 반대로, 일본이 반성은 제대로 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배상만 하면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가. 한·일 갈등의 핵심요소인 위안부 문제는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이 전부인 것처럼 인식된 지 오래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짓밟은 위안부 문제를 법적으로만 해결하려는 이 상황은 지독한 역설이자 한·일 모두의 불행이다. 


법은 인간사회의 가치체계에서 가장 하위의 개념이다. 특히 동양적 사고체계에선 가장 정점에 있는 ‘성(聖)스러움’을 인간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현실적 의미를 담아 구체화할 때 정의-도덕-예의-법의 순서로 내려온다. 정의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이며 도덕은 누구나 갖춰야 할 덕목이다. 예의가 없으면 비난을 받게 되고 법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사회적 계약에 따라 처벌받는다. 법은 인간이 지켜야 할 행동의 최소한일 뿐이다.


도의적 책임은 있으나 법적 책임은 없다는 일본의 주장은 “천벌 받을 짓은 했으나 사람에게 벌 받을 짓을 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과 같다. 


인류 보편적 가치 짓밟은 범죄

법적 책임 여부로만 해결 안 돼

시민단체에 휘둘린 정부는 방치

천덕꾸러기 된 위안부 문제

도덕적 우위 회복으로 

뒤틀린 정의 바로잡아야


법적 책임이 없다는 근거를 찾기 위해 청구권협정 문구를 머리칼 쪼깨듯 잘라 해석하는 것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서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천지가 개벽한다고 해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도적 행위를 자신들이 했다는 사실을 엄중히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한국도 배상이 아니라 이 부분을 명확히 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뒀어야 한다.


한국이 처음부터 법적 배상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는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일본은 은폐하지 말고 진상을 조사해 이를 역사에 남김으로써 후세를 교육하라는 것이었다. 피해자인 한국의 의연한 태도에 일본은 더욱 위축됐다. 일본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낸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위안부 문제 해결 원칙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시민단체와 일부 피해자의 주장과 국민 감정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는 학계와 시민단체가 위안부 문제를 파헤치고 세상에 드러낼 때까지 회피·외면으로 일관해왔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용기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위안부 문제의 주도권이 시민단체에 넘어가고 정부가 이들이 주도하는 위안부 운동 방향과 여론 조성에 휘둘리게 된 것은 어쩌면 정부의 업보인 셈이다. 


특히 이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라는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상황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노무현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정하고도 일본과 법적 해석 차이를 해소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다. 이 결정으로 정부는 한·일관계의 아킬레스건인 청구권협정의 법적 해석을 놓고 일본과 정면승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고, 그 결과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2015년 합의를 통렬히 비판하고 이행을 거부했지만 파기할 수는 없었다. 재협상을 해도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을 얻어낼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5년 합의를 이행도 파기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허공에 띄워놓자 피해자들은 다시 헌법재판소로 달려갔다. 하지만 헌재는 2011년 결정 때와는 달라진 태도를 보이며 “이 문제는 위헌심판 대상이 아니다”라고 각하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미해결 상태로 방치하고, 헌재는 골치 아픈 문제를 갖고 오지 말라 하고, 상징적 시민단체의 대표는 국회의원으로서 정계로 진출해버리고, 가해자 일본은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이 위안부 문제를 30년간 끌고온 한국이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위안부 문제는 이렇게 아무도 손대지 않으려는 천덕꾸러기로 만들어놓고 끝낼 사안이 아니다. 지금 할 수 없다면 다음 정부, 앞으로 ‘환골탈태’된 시민단체, 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는 국민들이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위안부 문제에서 실종돼 버린 한국의 ‘도덕적 우위’를 되찾아 오는 것이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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