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ODA 철학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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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문재인 정부의 ODA 철학은 뭔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5. 13.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파라과이 산페드로주에 건립한 종합병원.


코로나19 방역에서 ‘한국형 모델’로 모범적인 성과를 거둔 정부는 지금 두 번째 과제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닥쳐올 ‘코로나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기업의 해외 인프라 수주를 위해 향후 3년간 신남방·신북방 정책의 주요 파트너 국가를 대상으로 공적개발원조(ODA) 승인 규모를 70억달러(약 8조5000억원)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풀어보면, 문재인 정부의 외교전략인 신남방·신북방 정책 거점 국가에 대규모 ODA를 지원해 인프라 사업을 발굴하고 그 사업을 국내 기업이 수주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정부의 외교전략 추진과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일거양득의 방책처럼 보이지만, 이 계획은 개발원조의 국제적 규범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ODA는 빈곤국의 발전을 위해 선진국이 지원하는 공적자금이다. 냉전시대 ODA는 개도국을 자기 진영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에는 인도주의와 인권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ODA를 국가전략이나 경제적 이익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현재 ODA는 유엔이 새천년개발계획(MDGs),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통해 제시해온 빈곤 퇴치·평등·환경·교육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지향하고 있다.


1980년대 시작된 한국의 초기 ODA는 재벌기업의 해외 진출 수단이었다. 무상원조가 아닌 유상원조가 대부분이었고 사업 시행은 물론 자재·용역 조달까지 국내 기업이 맡도록 제한된 ‘구속성 원조’였다. 그러다가 2009년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되면서 한국은 ODA 국제기준 충족을 요구받게 됐다. 당시 한국의 DAC 멤버십은 ODA 규모를 국민총소득(GNI) 대비 0.25%까지 늘리고 구속성 원조를 25% 이하로, 무상원조 비율을 90% 이상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DAC 가입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은 이 약속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구속성 원조로 해외 인프라 수주

ODA, 대외전략·수출의 도구로

원조 국제규범에 역행하는 정책 

코로나 경제위기 대처도 좋지만

개발원조 지향점 분명히 해야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해외 인프라 수주 프로젝트’는 차관 형태의 유상원조이며 구속성 원조다. 구속성 원조는 지원금이 수원국의 경제에 유입되지 않고 고스란히 공여국 기업에 되돌아가는 구조여서 개발 효과도 낮고 ‘수원국 중심’이라는 ODA 원칙과도 거리가 멀다. 한국 ODA가 저평가받는 이유도 구속성 원조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계획은 신남방·신북방 거점인 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우즈베키스탄·동구권 국가 등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DAC의 수원국 리스트에 있기는 하지만, 원조가 절실한 빈곤국이 아니다. 원조보다 정상적인 경제협력이 더 어울리는 국가들이다. ODA를 이처럼 노골적으로 외교전략과 경제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면서, 그것도 국가의 연간 ODA 총액의 3배에 가까운 엄청난 액수의 유상·구속성 원조를 향후 3년 동안 배정하겠다는 이 계획은 국제적 규범은 물론 정부가 2018년에 개정한 국제개발협력기본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특정 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정경유착의 소지도 있다.


물론 ODA는 국민 세금이기 때문에 국익을 고려치 않고 타국의 이익만을 위해서 사용될 수는 없다. 또한 ODA도 큰 틀에서 외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국가 정책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ODA는 국익을 직접 목표로 하기보다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의 결과’로 국가에 보탬이 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일반 외교나 경제협력과는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정부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 정책을 내놓기까지 ODA의 방향성을 놓고 고민이라도 한 번 해본 흔적이 없다는 게 우려스럽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개발도상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강조하고 “사람 중심의 개발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번 해외 인프라 수주 계획은 이 발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임기 반이 지났지만 문재인 정부의 ODA는 지향점이 무엇인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100대 국정과제 중 99번째에 ODA가 들어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ODA 철학은 무엇인지 정리해 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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