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와 극단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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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교도소와 극단주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2. 26.

독일 베를린 성탄시장에 트럭이 돌진했다.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던 민간인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테러범은 폭탄이 아니라 쉽게 구할 수 있는 트럭을 이용했다. 테러조직이 운영하는 훈련소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난민이 범인이었다. 급조폭발물(IED)이나 액체폭탄은 훈련을 받아야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로테크(low-tech) 테러가 급증하고 있다. 칼, 도끼 등 어디에서도 구할 수 있는 도구나 트럭과 같은 차량이 테러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극단주의 사상이 교도소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사회적 인간을 교정 및 교화하는 곳이 오히려 테러의 인큐베이터가 되고 있다. 베를린 트럭테러 범인인 튀니지 출신 아니스 암리도 교도소 출신이다. 난민으로 이탈리아에 입국해 난동을 부리다 현지 교도소에 수감됐다. 4년 동안 그는 제한된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과격 이슬람주의 세력과 교류했다. 평소에는 모스크에도 거의 가지 않던 청년이 과격 이슬람주의에 빠졌다. 그리고 트럭을 몰고 민간인들에게 돌진했고, 결국 사살됐다.

 

끊이지 않는 유럽 테러의 범인 상당수가 암리처럼 교도소 출신이다. 지난해 11월 파리테러의 주범 살라 압데슬람도 벨기에 감방에서 극단주의에 물들었다. 그는 차량강도범이었다. 올해 7월 프랑스 성당에서 신부를 살해한 19세 테러범도 교도소에서 범행 4개월 전 출소했다. 잡범이 교도소에서 ‘정신적 스승’을 만나 극단주의자로 변신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유럽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중동의 과격주의와 테러조직은 교도소와 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슬람국가(IS)의 모체인 ‘유일신과 성전’ 설립자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도 교도소 출신이다. 요르단 수도 인근 빈민가 자르카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이슬람에서 금하는 술을 마시고, 문신을 하고 다녔다. 성폭행 혐의로 수감생활도 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바로 감방에서 만난 원리주의자들의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후에 21세기 괴물 테러조직 IS의 기반을 다졌다.

 

역사적으로도 중동 내 과격 이슬람주의 등장은 옥중에서였다. 무차별적 지하드를 주창한 최초의 과격 이슬람주의자 이븐 타이미야의 저서 상당수가 수감 중에 집필됐다. 13세기 중반 몽골의 침략으로 이슬람제국이 무너진 이후 그는 비이슬람적 정부와 조력자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했다. 현대 극단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이트 쿠틉의 저서 <이정표>도 옥중에서 완성됐다. 온건한 이슬람주의자였던 그는 체포, 고문, 그리고 투옥의 과정을 거치면서 급진적인 이슬람주의를 주창했다. 이슬람 본래의 가르침에 반하는 정권, 제도, 그리고 세력에 대한 공격을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교정기관인 교도소는 재범을 막기 위한 교화의 장이다. 하지만 동시에 불만과 극단주의가 ‘집단화’할 수도 있는 공간이다. 신체적 자유가 제한된 공간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관에 대해 고민하고 재정립한다. 그 과정에서 유럽 사회에 정착하지 못한 일부 무슬림 청소년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자아에 빠지면서 극단주의에 물들기도 한다. 중동의 권위주의 정권하에 운영되는 사법 및 교정기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인권과 거리가 먼 체포, 구금, 고문 등을 당하고 비인간적인 시설과 처우 속에서 수감자는 극단적 이념에 쉽게 유혹당한다.

 

극단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의 사법 및 교정 시스템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2006년 개봉한 영화 <홀리데이>가 생각난다. 암울한 1980년대 부당한 선고를 받은 잡범들이 탈옥을 감행한다. 인질극까지 벌이다 결국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들이 외친 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순수한 청년들의 불만이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장면이다.

 

서정민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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