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극단에 선 세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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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극단에 선 세계 정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2. 5.

2016년,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격동하는 세계정치의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선진 민주국가의 국민투표와 선거에서 매우 비정상적이고 충격적인 결과가 줄줄이 이어졌다. 지난 6월 영국 국민은 유럽연합(EU)에서 탈퇴를 결정했다. 같은 달 이탈리아 지방선거에서는 기존 정치를 부정하는 ‘오성운동’이 로마와 토리노를 장악했다. 11월에는 미국 국민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거짓과 변덕과 증오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번 주말 오스트리아에서는 극우 대통령이 당선될 수도 있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국민투표로 마테오 렌치가 이끄는 개혁적 정부가 붕괴될 수 있다. 내년 5월에는 프랑스 대선, 그리고 9월에는 독일 총선이 예정되어 있어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경향은 양극화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 그리고 프랑스 극우 마린 르펜의 부상을 보면 우경화 현상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인종차별적 발언과 이민·난민 등에 대한 극단주의가 이런 해석을 부추긴다. 하지만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고립주의 성향은 극우와 극좌의 공통분모다. 영국 노동당 제러미 코빈의 인기나 미국 민주당 버니 샌더스의 선전은 유권자의 좌경화 흐름을 잘 보여준다. 2015년 그리스에서 극좌세력 시리자가 집권한 것은 대표적인 좌경화 사례이며, 스페인에서 포데모스의 의회 진출 또한 같은 맥락이다.

 

대서양 양쪽에서 유권자들이 극단을 선호하는 이유는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보편적인 실망, 거부, 분노와 증오 때문이다. 정부와 의회가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고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만 혈안인 비극적 상황을 더 이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외침이다.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파나마 페이퍼스’ 사건으로 재산 해외도피 의심을 받았고, 토니 블레어 전 총리도 기업과의 혼탁한 관계로 구설에 올랐다. 미국의 클린턴 가족은 권력과 돈의 관계에서 무척 불투명하고 지저분하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역시 검은돈과의 더러운 관계로 다수의 송사에 휘말려 있으며, 사회당 올랑드 정부에선 예산장관이 스위스 비밀계좌로 탈세를 일삼았다!

 

많은 유권자들은 극단적 정치세력의 문제점과 과격함을 알지만 기존 정치세력이 너무나 싫기 때문에 눈감아 준다고 말한다. 미국의 트럼프나 프랑스의 르펜 지지자에게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설명이다. 그런데 극단세력도 대중의 분노를 활용해 집권에 성공하면 아웃사이더에서 인사이더로 돌변한다. 권력은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기존의 구조에서 자신의 배를 채우고 불리는 데만 열중한다. 그리스 극좌 치프라스 정부는 예전의 통치자들과 다름없는 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트럼프 역시 당선 이후 매우 ‘온순’해진 모습이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세상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래도 평소의 불만을 대변해 주는 목소리가 정치의 장에 충격을 주고 풍파를 일으킨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감정적 위안의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결과로 국가의 미래에는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경험이 부족한 신생 정치세력의 집권은 면허증이 없는 선장이 배를 모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이 겪는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는 요즘 한국에서도 극렬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매주 광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매 순간 집권과 당선의 계산기만 두드리는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을 뜻한다. 기존의 정치세력이 잔꾀를 부리며 얄밉게 행동할수록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축적될 것이다. 불행히도 다른 민주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극단적 유혹의 위험에서 한국만이 예외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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