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주주의 판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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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반민주주의 판별법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2. 12.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시국에 한 줄기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짙은 안개가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고 여전히 혼란스럽다. 왜 안 그렇겠는가.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밝히는 것이 웬 말이냐며 정부의 앵무새 역할을 자처하던 보수언론이 철저한 규명을 요구하고 있고, 보수진영조차도 들고일어나 대통령을 탄핵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한국은 뒤숭숭한 혼란의 아노미 상태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도 매한가지다. 미국에선 극빈층으로 하릴없이 추락해가는 중산층이 그것을 막아달라며 보수당의 부동산 재벌 트럼프를 뽑은 것이 모순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정상과 비정상, 정의와 비정의, 그리고 민주주의적인 것과 반민주주의적인 것이 심히 헷갈리고 있는 시점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거에 정리해주는 아주 명쾌한 잣대가 있다. 민주주의는 민심의 충분한 반영을 보장한다. 미국과 한국에서의 민심은 공히 서민들의 삶을 갈수록 피폐하게 만드는 부패 기득권 세력의 척결을 요구한다. 현시점에서 미국과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를 판별하는 쾌도난마의 잣대는 무엇일까?

 

먼저 미국이다. 미국에서 부패 기득권 세력은 바로 월가를 필두로 한 금권세력이다. 해서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를 가르는 잣대는 바로 월가 편을 드느냐이다. 그래서 월가가 더 이상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지 못하게 월가를 쪼개 버리겠다는 샌더스야말로 확실한 민주세력이다. 트럼프도 당선 이전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누가 봐도 월가와 척지는 것같이 보인 반월가 인사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월가를 대대적으로 손보겠다며 선전포고를 했었고,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트럼프는 월가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트럼프의 금융 관련 기록만 봐도 트럼프는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과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았다. 전직 골드만삭스 직원이었다가 지금은 뉴욕대 재정학 교수인 로이 스미스가 “월가와의 연고나 연계성을 트럼프에게서 거의 찾을 수 없다”고 ‘뉴욕타임스’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신빙성이 높다. 물론 지금도 그런지는 다시 따져야 할 문제다. 어쨌든 당시에는 그랬기에, 월가를 철천지원수처럼 여기는 미국의 대다수 서민들이 클린턴에게 등을 지고 비록 출신이 자신들과 한참이나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즉 미국의 성난 민심은 월가와의 밀착관계 여부를 민주주의자의 가늠자로 여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나는 현시점에서 민주와 반민주를 판별하는 잣대는 개헌론이라고 생각한다. 탄핵 이후 혼미한 정국을 틈타 개헌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조기대선이 가시화된 현시점에서 시간상, 그리고 여건상 개헌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헌론자들의 속셈은 뻔하다.

 

개헌론을 고리로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꾀하고 그것을 통해 기사회생, 심지어 정권연장을 도모하려는 간교한 정치공학적 술책이다. 단언하건대 그들은 개헌을 입에 올리기보다 자신들이 저지른 죗값으로 석고대죄와 정계은퇴를 해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국민은 개헌론을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먼저 들고나왔음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바로 해방 이후의 반민주주의적 적폐의 청산이다. 암 덩어리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고 정의로운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이 마당에 썩어 문드러진 현 체제 고수를 위한 정략적 꼼수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수술대 위에 암 환자를 이제 막 올려놓았다. 개헌론자는 정밀한 수술 없이 얼렁뚱땅 얼른 봉합하고 싶어 안달하는 세력이다. 지금은 적폐의 근원을 뿌리째 뽑아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성공적 수술의 관건은 개헌이 아니다. 이 시점에 개헌을 입에 올리는 자, 그는 그 소중한 기회를 박탈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적이다.

 

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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