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신체와 혼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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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김민정의 '삶과 상상력'

근대의 신체와 혼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0. 25.

‘혼혈’에 대해 좀 더...: 근대의 신체와 혼혈

 

신체상의 차이는 차별을 야기하는 가장 일반적인 현상이다. 사실 신체의 모양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특정한 의미를 붙이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 서양인의 큰 키와 높은 코, 움푹 들어간 쌍까풀진 눈과 노랑머리는 낯설고 두려운 힘센 이방인의 표상이었지만, 오늘날엔 한국인이 선망하는 외모적 특성 속에 녹아들었다. 미합중국 건설기에 노예로 살아 온 아프리카 인들의 검은 색 피부는 고질적인 인종차별의 상징이지만, 몸매 좋은 젊은 여성의 태닝한 피부는 섹시한 건강미와 삶의 여유를 떠올리게 하는 매력 요소이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체는 타고난 대로 보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선망받기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길들이고 변형해야 하는 ‘원료’이다.
어떤 종류의 투자로 ‘가치 증식된’ 신체인지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 사람들은 돈과 시간을 들여 헬쓰 센터에서 근육을 과다하게 키우거나 성형수술로 타인의 신체부위와 같은 몸을 만드는 데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본디 타고난 신체 모양의 다양성과 개성은 평가 절하된다. 또한 선망받는 신체의 형태와 특징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유행을 탄다. 여러 형태의 신체관련 시장을 전제로 몸에 대한 가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근대 민주주의 사회는 생득적인 신체적 차이에 대한 차별을 가장 명백한 ‘인권’ 침해로 규정하고 이를 시정하는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 인종, 젠더, 연령은 누구든 처음 보는 순간 딱 알게 되는 신체적 특징으로 사람들을 나누는 범주이며, 근대가 진행되면서 이에 대한 차별은 시정되고 평등을 지향하여 왔다.
공식적인 미국의 인종차별이나 남아공의 흑백분리정책은 폐기처분되었고, 남녀의 사회적 지위와 활동의 격차는 줄어들고 있으며 성적 소속감이 출생 이후 변화가능하다는 인식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미성년자의 입장에서는 보다 세심한 수준의 인권이 요청되고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혼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다양하며 변화 와중에 있다.

혼혈은 외모상 정확히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의 대상이 된다.
혼혈은 여러 차원에서 다르다고 인식하는 다양한 현상을 지칭할 뿐 그 다름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는 아니다. 즉 ‘범주 외’에 해당하는 범주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정 사회에서 혼혈에 이름을 붙이고 차별하는 방식은 다르게 나타난다.

 

키아누 리브스는 영국+하와이+중국+포루투갈 혼혈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를 두었다.



미국사회의 혼혈 인식방식은 “한방울 법칙”(one drop rule)으로 유명하다.

흑백간 혼혈은 여러 세대를 거쳐 백인에 가깝더라도 먼 조상 중 한 명이라도 흑인이 있으면 흑인으로 간주
되는 것이다. 즉 ‘얼마나 흑인 피가 섞였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며, 혼혈인은 부모 중 낮은 위계에 속한 인종/ 민족의 범주로 분류된다.

차별하기 위해 차별의 요소를 가능한 끝까지 추적하는 식이다. 그 배경에는 흑인노예제를 통한 부의 축적, 노예해방 이후에도 주별로 지속된 차별정책, 20세기 흑인 인권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미국 역사와 정치경제 구조가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 대륙부에서 혼혈은 흑백 ‘인종’ 문제로 제기되고 아시아나 태평양, 라틴아메리카 이주로 인한 혼혈도 종족/민족간 결합 보다는 인종문제로 인식된다.

반면, 북미에서 흑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도 중남미에서는 백인으로 분류된다.

과거 이베리아 반도에서 온 백인들이 식민지 지배를 하던 브라질의 경우, 식민모국 여성과 결혼할 수 있는 백인 남성은 상층 일부에 불과하였다. 대다수의 백인 남성들은 현지 여성과 결혼하였고 결과적으로 메스티조 인구가 지배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관심은 ‘얼마나 백인 피가 섞였는가’였다. 백인의 피가 섞인 메스티조는 가능한 백인으로 간주되어 온 것이다. 

또한 같은 미국이라 하더라도 하와이의 사정은 대륙부와 많이 다르다. 하와이에서는 본토와 달리 백인의 도래 이후에도 토착 왕조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흑인노예제 대신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이 농장노동을 했다. 결과적으로 하와이에서 ‘흑백’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혼혈은 인종문제가 아니라 언어와 관습이 다른 종족/민족간 혼합으로 인식된다.
하와이에는 오히려 백인을 부르는 별도의 명칭-하올레(haole)-이 있고, 혼혈을 통칭하는 “하파”(hapa: half에서 온 말)라는 말에도 차별적 어감은 없다. 하와이에서 자란 한 중국인 중년여성은 초등학교 시절 학년초에 친구들이 서로 어디 어디가 섞인 사람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면 그게 자랑처럼 들리고 부러웠다고 회상한다.

필자가 사정을 좀 아는 필리핀의 경우도 혼혈 자체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거의 없다. 식민지배층이던 스페인이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중국인과의 혼혈 흔적은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 된다.
단, 기대에 부응하는 경제적 부나 사회적 신분이 결여되어 있을 때는 역으로 낙오자처럼 간주될 수 있다. 즉 혼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사회적 지위가 현실화되었는지 여부가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노라 존스는 유명한 시타연주자인 인도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남미대륙이나 하와이나 필리핀의 사례를 보면 이주의 역사가 오래되고 혼혈인의 구성비가 늘어날수록 혼혈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러나 미대륙의 사례처럼 실제로 혼혈이 진행되어도 계속 흑백 구도로 인식하면 차별적 인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대륙의 역사는 근대국가 내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의도가 ‘혼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크게 좌우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늘날 국경을 넘나드는 방문과 이주가 늘어나면서 세계는 더욱 더 촘촘히 연결되고 생활방식과 인종은 뒤섞이고 있다. 지난번 글에서 소개한 킵 풀백 책의 표지 인물은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누구냐고? 나는 2500년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다”라고 답한다. 

결국 인류 이주역사의 흐름으로 본다면, 생물학적으로 혼혈이 정상이고 다수가 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키아누 리브스나 노라 존스같은 세계적인 혼혈 스타들의 외모가 각광을 받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 신체 시장의 유행이 혼혈에게 우호적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

이주시대에 혼혈 문제에서 평등의 가치 실현은 ‘범주외’인 혼혈에 어떤 이름을 붙여 인식할 지를 모색하는 사회적 고민으로 시작된다.


김민정/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twitter:@minki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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