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시각각]난민에게 ‘문 열어야’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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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글로벌 시시각각]난민에게 ‘문 열어야’ 안전하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3. 2.

미국 오하이오주의 아크론이라는 소도시에는 프로슈토(말린 햄)와 피자를 파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많다. 100여년 전 이탈리아, 아일랜드, 폴란드 ‘난민’들이 전쟁과 기근을 피해 와 이 도시에 터를 잡았다. 그 후손들은 가까운 디트로이트의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다가 돈을 모으면 식당을 차렸다. 하지만 자동차산업이 무너지자 아크론도 침체에 빠지고 빈집이 늘었다.

 

그런데 지난 10년 새 또 다른 공동체가 생겨났다. 2007년부터 부탄인 3500여명이 정착하면서, 비어가던 도시에 새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크론만이 아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이리는 주민 5명 중 1명이 난민과 이주민이다. 뉴욕주 우티카, 텍사스주 아마릴로, 켄터키주 볼링그린도 몇년 새 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도시 경제를 살리는 동력이 되고 있다.

 

가족과의 재회, 병원 치료, 일자리…. 각기 다른 이유로 미국에 정착하길 바라는 난민들의 행렬은 지금도 이어진다. 미국은 재정착 제도(Resettlement)를 통해 해마다 5만명 수준의 난민을 꾸준히 받아들여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하는 이들의 미래가 불확실해졌다.

 

언론의 관심은 부국으로 향하는 난민들에게 집중돼 있지만 사실 2000만명이 넘는 세계 난민의 절대다수는 자기 나라와 이웃한 개발도상국에 머문다. 북미와 유럽에 재정착하는 난민은 전체의 1%에도 못 미친다.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대부분은 터키, 레바논, 요르단, 파키스탄 등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대다수 난민은 조속히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난민들의 삶을 재건할 세 가지 방법 중 첫째가 이들의 본국 귀환이다. 두번째는 이들이 처음 도착한 나라에서 통합되는 것이다. 세번째 방법이 먼 타국에서의 재정착이다.

 

일반적인 이민과 달리 난민들은 재정착국을 선택할 수 없다. 오히려 재정착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가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받아들일 난민을 선택한다고 볼 수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난민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재정착 난민 대상자로 선별해 일차적으로 심사와 면접을 한다. 이중 절반 이상은 아동이다. 난민기구 심사를 통과한 이들은 재정착국의 까다로운 심사를 다시 거친다. 홍채인식과 지문검사, 심층면접 등 최소 스무 단계의 심사를 받고서 길게는 2년의 기다림 끝에 입국통보를 받는다. 재정착 난민 중 테러리스트와 같은 ‘위험분자’가 발생할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이유다.

 

콩고민주공화국을 떠나 미국 애리조나주에 재정착한 찰리 고마는 평생 나초나 부리토를 먹어본 일이 없다. 미국에 도착한 그는 패스트푸드 체인인 치포틀레 멕시칸그릴에 취직했고 1년 반 뒤 피닉스 지점의 총지배인이 됐다. 그는 난민기구와의 인터뷰에서 “언어부터 공기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매일이 새 삶처럼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찰리 고마 같은 이들의 현지통합률이 높은 이유는 난민 개인의 의지는 물론, 제도가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치포틀레 멕시칸그릴은 국제구조위원회(IRC)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난민을 고용한다. 재정착 제도가 있는 국가는 대부분 난민들에게 언어와 문화 교육을 진행한다.

 

2015년부터 이 제도를 시범운영하고 있는 한국도 영종도의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재정착 난민에게 숙식과 교육을 제공한다. 성공적으로 정착한 난민들이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여러 연구결과가 입증해준다. 상대적으로 인적자원이 많은 지역에서 일손이 부족한 부국으로 인구가 옮겨가면 세계 경제를 살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난민 위기는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시리아 내전이 끝나도 지구상에서 전쟁이 사라지길 기대하긴 힘들다. 세계는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다. 난민과 실향민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들을 받아들이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나라의 책무다. 난민들 고향과의 거리, 지도자의 정치성향, 여론, 그 어떤 것도 난민에게 등 돌릴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옆집에 불이 났을 때 우리 집 문을 걸어 잠근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신혜인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공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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