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월가 보안관’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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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자칼럼]‘월가 보안관’의 퇴장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3. 16.

지난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해고당한 프리트 바라라 뉴욕주 남부지구 연방검사장은 다음날 트위터에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월가에서 퇴장했다. “이제 나는 모어랜드위원회가 어떻게 느꼈을지 알겠다.”

 

‘모어랜드위원회’는 2013년 7월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주정부와 정치권의 부패를 뿌리 뽑겠다며 만든 조사위원회다. 위원회에 전·현직 검사 25명이 모였다. 영장을 발부받을 수 있고 강제조사 권한도 있었으니 특검과 다를 바 없었다. 위원회는 그해 12월 야심찬 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4개월 후 허망하게 해체됐다. 위원회를 만든 쿠오모의 손에 의해서. 쿠오모는 “주의회가 윤리개혁에 동의해 위원회가 필요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뒤이어 뉴욕타임스가 폭로한 진상은 달랐다. 위원회의 조사가 주지사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오자 쿠오모의 측근들이 나서 위원회를 없애 버렸다는 거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바라라가 세간에 잊혀진 모어랜드위원회를 끄집어내자 해석이 분분했다. 그저 산적한 중요한 일을 두고 떠나야 하는 심정을 말한 거라는 시각부터 자신을 해고한 트럼프를 쿠오모에 빗대 비판한 거라는 해석도 있다. 바라라는 두 살 때 인도인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다. 하버드대를 차석으로 졸업하고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온 뒤 로펌에서 일하다가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 연방검사 시절 뉴욕의 거대 범죄조직과 갱단을 때려잡는 강단을 보인 바라라를 뉴욕 남부지구 연방검사장으로 임명했다. 미 전역 93개 지구 연방검사장 중 이 자리는 말 그대로 ‘월가 보안관’이다.

 

바라라는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금융위기 직후인 당시 월가 1%의 약탈에 대한 99%들의 분노는 깊었다. 취임 후 두 달 만인 2009년 10월16일 바라라는 뉴욕 맨해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0억달러를 굴리던 헤지펀드 매니저 라지 라자라트남을 증권사기 혐의로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표현대로 “월가를 깨우는 모닝콜”이었다. 이후 바라라의 칼날은 거침이 없었다. 헤지펀드의 거물 스티븐 코헨, 시티뱅크,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이 그의 손에 기소되거나 거액의 벌금을 물어냈다. CNBC 집계에 따르면 바라라는 내부자 거래로 111명을 기소했다. 그중 89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1건만 무죄, 나머지는 공소가 기각된 경우 등이었다.

 

뉴욕주의회 의장 셸던 실버, 뉴욕 상원 원내대표 딘 스켈로스 등 유력 정치인들도 부패 혐의로 줄줄이 기소됐다. 여야의 구분도 없었다. 민주당인 쿠오모와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바라라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012년 바라라는 ‘이 사람이 월가를 부수고 있다’는 표제와 함께 주간 타임의 표지를 장식했다. 2014년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 사의를 표명했을 때 후임 법무장관으로도 거론됐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3일 사설에서 바라라를 “ ‘늪의 물을 빼는(drain the swamp)’ 법을 알았던 검사”라고 평했다. 유해한 것을 일소한다는 뜻의 이 표현은 트럼프가 대선에서 워싱턴 정가를 겨냥해 기득권과 부패를 척결하겠다며 우려먹던 말이지만 결국 ‘물을 잘 빼는 검사’를 잘라버렸다.

 

트럼프가 지난해 11월 트럼프타워로 그를 불러 유임을 약속해 놓고 3개월 사이 돌변한 ‘속사정’은 뭘까. ‘안티 오바마’를 내세운 정치적 숙청이라고만 보기엔 석연치 않다. 월가에는 트럼프타워가 있고 트럼프의 ‘절친’도 많다. 정부에도 월가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분명한 건 바라라의 퇴장을 보며 뒤에서 웃을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한 월가 애널리스트는 CNBC에 “이런 자를 제거하는 건 은행들에도 끝내주게 멋진 일이지만 미국의 정의에도 좋은 일”이라고 쌍수를 들었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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