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쿠바식 발전의 새로운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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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쿠바식 발전의 새로운 진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2. 6.

- 2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지난 500년 신대륙 아메리카의 역사 속에서 쿠바는 식민지 수탈구조의 전형적 사례로 자리해 왔다. 귀금속과 설탕이 서인도 항로를 대표하는 무역상품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쿠바식 발전의 원형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흑인 노동력을 활용한 대규모 설탕 농장에서 창출된 부는 스페인으로 유출되거나 토착 자본의 수중에 집중되었다. 19세기를 거치며 대다수 중남미 국가들이 독립에 성공하였지만 쿠바는 호세 마르티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1898년 미국의 식민지로 귀결되었다. 결국 20세기 혁명 이전의 쿠바는 매판자본과 결탁한 독재정부가 민중의 권리를 억압하거나 재산을 착취하는 기형적 구조로 재편됐다.

 

체 게바라가 헌신한 쿠바혁명은 우리의 촛불혁명처럼 순수하고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50년 동안 피델 카스트로 정부가 보여준 ‘또 다른 발전’은 쿠바혁명으로 밀려난 바티스타 정부의 추종세력을 연상시키는 기득권의 거센 반격에 직면해 그 종착지가 유동적인 상태다. 실제로 카스트로 사망 이후 쿠바식 발전의 공과와 미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회주의의 관료화를 극복하고 신사회주의를 선도한 그이지만 자본주의와 단절하는 과정에서 국부와 직결된 신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일에는 미흡했기 때문이다.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쿠바혁명은 구소련의 후원을 배제한 상태에서는 유지되기 어려웠다. 1962년 쿠바 미사일위기를 계기로 미국과 근접한 쿠바는 소련에 근접한 한국처럼 자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원조정치에 활용하였다. 이후 소련과 미국은 냉전의 최전방 쿠바와 한국에 대한 경제·군사원조를 확대했다. 하지만 냉전 해체 이후 동병상련의 처지로 전락한 북한과 쿠바는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하며 자력갱생에 몰두해 왔다.

 

혁명 이후 미국과의 단절은 물론 세계화에 역행한 쿠바는 수출지향산업화를 채택한 동아시아 신흥공업국가들과 달리 중남미 특유의 수입대체산업화를 표방하면서 식량자급을 위한 유기농업 중시, 의료서비스 강화를 위한 의과대학 확충, 베네수엘라나 북한과의 구상무역을 활용한 석유와 무기 확보 등에 주력했다. 향후 가속화될 쿠바의 개혁·개방은 북한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온화한 기후와 화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와 멕시코 칸쿤을 능가하는 관광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 미국과의 직항노선이 재개되자 관광과 교통 인프라 확충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스페인의 식민통치와 미국의 경제봉쇄가 합성한 박제화된 쿠바의 고전적 이미지도 약화될 것이다. 물론 쿠바의 급격한 시장화를 우려한 집권세력의 속도조절이 한동안 계속되겠지만 중국과 같은 연착륙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카스트로의 쿠바는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룰라의 브라질, 모랄레스의 볼리비아, 무히카의 우루과이 등으로 대표되는 중남미 신사회주의 열풍의 진원지이자 행복국가의 시금석이었다. 최근 중남미 신사회주의가 약화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는 멕시코, 군사정부의 유산인 포퓰리즘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 등과 비교하면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국격을 중시하는 쿠바 모델이 국부까지 장착해 새로운 모델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김정렬 | 대구대 교수·도시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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