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트럼프, 전 세계와 등지고 살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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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트럼프, 전 세계와 등지고 살자는 건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1. 31.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난민의 미국 입국을 120일간 중단하고, 이라크와 이란 등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90일간 금지하는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맞서 미국 연방법원들이 공항에서 발이 묶인 입국자의 강제송환 금지 결정을 잇따라 내리고, 국내외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 등 반발이 거세다. 하지만 트럼프는 “무슬림을 금지하는 게 아니다. 유럽에서 (난민 유입과 테러 빈발 등)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라”며 행정명령을 고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조치에 서명한 데 이어 무슬림 입국 거부까지 트럼프의 고립정책이 강도높고 신속하게 실행되면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

 

수천명의 시위대가 2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톰브래들리국제공항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히틀러로 그린 깃발 등을 들고 반이민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_ AFP연합뉴스

트럼프의 행정명령 파장은 단순한 무슬림의 국내 입국 금지에 그치지 않는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춰온 동맹을 한순간에 배제함은 물론 적으로 돌린 셈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제안보 질서는 미국이 수십년 전부터 동맹들에 한 약속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약속들이 자국에 불리하다고 하루아침에 파기하는 것은 지구촌을 유지해온 평화의 근간을 흔드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한 것은 과거의 선택이지만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당장 이를 흔들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또한 이민정책으로 나라를 발전시켜온 미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이다. 미국은 자본과 노동의 국경을 넘은 자유로운 이동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다. GE와 JP모건체이스 등 미국 대기업들과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 그 증거다. 실리콘밸리는 물론 미국의 과학계는 전 세계에서 우수인력을 공급받은 덕에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었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은 차별 철폐의 길을 걸어온 인류의 흐름과 보편적 가치에도 어긋난다. 미국 혼자 편해지자고 전 세계를 빈곤과 폭력에 내모는 반이민 행정명령은 거두어야 한다.

 

트럼프의 행정명령 발동 방식도 적이 우려스럽다. 미국은 이라크 등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중동 전문가들의 조언도 반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향후 중국에도 같은 방식으로 대할 경우 그 파장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으로선 끔찍한 일이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은 테러리스트들의 명분을 강화해주는 역효과만 낼 것이다. 이런 막무가내식 행동은 세계의 지도국가를 자임하는 미국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이번 조치를 환영한 것은 유럽의 극우정당들뿐이라는 사실을 트럼프는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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