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트럼프 통상 대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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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트럼프 통상 대응법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0. 1.

지난 수요일,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아베 일본 총리의 하루는 그에게 평생 기억해야 할 날이 되었다. 일본산 자동차가 25% 관세 폭탄으로 두들겨 맞는 사태를 일단 막았다. 그러나 미·일 무역협정 협상 개시를 선언해야 했다. 그날 아베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미·일 무역협정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은 자동차 징벌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일본은 오랫동안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자는 미국의 요구에 저항해 왔다. 심지어 지난 수요일조차도 아베 총리는 ‘FTA’라는 단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의 통상 전략인 다자주의 경제 질서를 일본이 포기하고 양자 간 FTA를 수용한 것으로 비치고 싶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내고 있는 일본이 미국과 일대일의 양자주의 FTA를 체결하게 될 경우 일본이 더 강한 양보 압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아베 총리는 FTA를 거부했다. 미국을 포함한 열두 나라들로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애초 오바마 전 대통령도 협정에 서명까지 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작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TPP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그리고 일본에 양자 간 FTA를 요구했다. 아베 총리는 오랫동안 저항하면서 미국이 빠진 11개 나라들끼리의 ‘TPP 11’ 협정을 추진했다. 올 3월에 일본 국회의 비준동의까지 받았다. 그러나 일본산 자동차에 25% 관세 폭탄을 매길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에 결국 마음을 바꾸어야만 했다. 무역협정 협상을 하는 동안 자동차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확하게 밝혔듯이, 안보는 안보이고 통상은 통상이다. 아베 사건은 그 한 예이다. 특히 트럼프 외교는 통상을 대외관계의 핵심으로 한다. 그는 미국에 무역적자를 맛보게 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두 종류만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에 제대로 대응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자주의 국제경제 질서를 복원하는 통상 균형자이다.

 

트럼프가 아베를 돌려세운 자동차 25% 관세 폭탄은 트럼프가 요구하는 FTA와 모순이다. 트럼프는 자국법의 국가 안보 조항을 이유로 내세워 자동차 관세 폭탄을 준비하고 있는데, FTA는 이와 같은 관세를 금지한다. 2007년 6월30일,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함께 서명한 한·미 FTA 협정문은 ‘기존의 관세를 인상하거나 새로운 관세를 채택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2.3조). 그리고 미국은 한·미 FTA에서 당시 2.5%였던 자동차 관세를 발효 4년부터 폐지하기로 약속했다(부속서 2-나).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무려 열배인 25% 관세 폭탄을 던지려 하고 있다. 이것은 한·미 FTA 위반이다. ‘안보’를 이유로 한 예외는 핵무기나 전쟁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다자주의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함께 국제경제 질서에 참여한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화요일 유엔 연설에서 ‘세계주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25% 자동차 관세 폭탄은 그 예이다. 

 

중규모 개방 국가인 한국에는 안정적인 다자주의 질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 통상은 다자주의를 건강하게 가꾸는 데 집중해야 한다. ‘FTA 모범생’은 처음부터 중심적 전략이 될 수 없었음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신북방 정책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도 안정적 다자주의이다. 한국 통상은 미국 주도 질서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통상의 균형자가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한국 통상의 균형자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일본, 중국, 인도 등이 참여하는 이 협정에서 한국은 중간자 역할을 해서 성공을 주도해야 한다. 특히 개도국 등이 반대하는 외국인 국제배상권(ISD) 독소 조항 문제에서도 개도국 입장을 수용해서 새로운 모델을 선도해야 한다. 국제통상에서 균형자가 되어 안정적 다자주의를 끈기 있게 가꾸어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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