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젠더 앤 더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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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자칼럼]젠더 앤 더 시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7. 17.

30~40대 여성이라면 제목이라도 들어봤을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올해로 첫 방송 20주년을 맞았다. 1998년 6월6일 처음 방송된 이 드라마는 뉴욕에 사는 싱글 여성 캐리와 샬럿, 미란다, 서맨사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뉴요커의 삶을 비현실적으로 화려하게 포장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진취적이고 당당했던 주인공들의 모습은 전 세계 젊은 여성들이 뉴욕과 뉴요커를 동경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드라마 속 뉴욕은 여성들의 꿈이 실현되는 도시였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똑 부러지는 변호사 미란다를 연기했던 배우 신시아 닉슨은 실제 뉴욕을 멋진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3월 닉슨은 뉴욕 주지사 민주당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오는 9월 당내 경선에서 현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를 이기면 11월 중간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게 된다.

 

<섹스 앤 더 시티> 스틸컷

 

인지도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지만 닉슨 앞에 닥친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정치 경험 없는 유명인’에게 쉽게 믿음을 주지 않았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유명인을 선출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생생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닉슨이 여성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닉슨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비단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여성은 ‘자격을 갖췄다’는 사실을 다섯 차례 이상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이라 차별당한다는 감정은 단지 닉슨의 기분 탓이 아니다. 러트거스대 데비 월시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남녀를 비교할 때) 남성은 자격을 갖춘 것으로 간주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남성보다 더 크고 많은 성과를 남들 앞에 전시해야 하는 것이다.

 

뉴욕에서 닉슨처럼 분투하는 여성들은 또 있다. 중간선거 본선행 티켓을 획득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 뉴욕주 상원의원 경선에 출사표를 낸 줄리아 살라사르, 뉴욕주 검찰총장 선거에 출마한 제피르 티치아웃이 그들이다.

 

28세 신인 오카시오-코테즈는 지난달 27일 뉴욕 연방 하원의원 14선거구 민주당 경선에서 10선 의원 조지프 크롤리를 꺾었다. 영세 자영업자였던 미국인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가사도우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카시오-코테즈는 주류가 아니었다. 여성이고 유색인종이며 노동계급 출신이었다. 이번 경선에서 당의 지원은 없었다. 그는 유권자를 집집마다 찾아다니고 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며 밑바닥에서부터 지지 기반을 다져 올렸다. 공약은 민주당의 기존 노선보다 진보적인 의제를 내걸었다.

 

오카시오-코테즈의 경선 승리는 즉각 다른 3명의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시너지를 일으켰다. 닉슨의 캠프에는 하룻밤 사이 새로운 후원자 300여명이 1만5000달러(약 1700만원)를 기부했다. 몇몇 민주당 중진들이 닉슨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살라사르는 오카시오-코테즈의 승리 당일에만 후원금 2만달러를 모금했다. 티치아웃의 캠프엔 자원봉사자 120여명이 신규 등록했다.

 

뉴욕의 여성 정치인들은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과거 여성 정치인들이 마음의 응원을 주고받는 수준이었다면 이들은 공동 유세를 하고 자원봉사자를 서로 빌려준다. 오카시오-코테즈 캠프에 있던 자원봉사자들은 경선이 끝나자 닉슨과 살라사르, 티치아웃의 캠프로 ‘원정’을 떠났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물심양면 지지했던 것처럼 이들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준다. 기득권 정치인에게 실망한 유권자들에게 뉴욕의 여성 정치인들은 참신한 대안이 되고 있다. 뉴욕은 이들의 꿈을 실현해주고 여성 정치 지망생들이 동경하는 도시가 될까. 드라마 ‘본방’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9월 경선을 기다리고 있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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