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출발점에 선 ‘북·미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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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다시 출발점에 선 ‘북·미 대화’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10. 4.

북한과 미국이 4일부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무협상을 갖는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중단된 대화가 다시 이어지는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출발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실무협상은 서로 인식 차이가 얼마나 큰지 충분히 확인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진짜 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1년이 넘도록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다. 실무협상이 조속히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져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 내에 의미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에 북한 문제에서 어떤 것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는 이번 실무협상이 결정하게 된다. 국가전략노선의 대전환과 함께 모험을 시작한 북한의 운명도 여기에 걸려 있다.


예를 들면 북·미는 이번 실무협상에서 한반도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단초를 만들 수도 있고 현실적 성과를 얻기 위해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다. 또는 파국적 결별을 맞아 군사적 대치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으며, 친구도 적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내년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북·미관계와 북핵 문제가 동면에 들어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번 실무협상은 대화국면이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한 승부처다.


지금까지 남·북·미는 모두 전략적으로 면밀하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치적 성과에 집착해 협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그리고 미국이 실수를 만회하려는 과정에서 대화가 꼬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화의 기초가 부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북·미 모두 원래 위치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서두르다가 남북과 북·미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북한은 ‘트럼프=미국’으로 인식한 것이 문제였다. 북한은 지금도 트럼프만을 상대해 대미관계를 풀어가려는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야구 경기에 비교하면,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상황이 펼쳐졌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실책과 본헤드 플레이가 속출한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제부터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실무협상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이 모두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번 실무협상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성공적인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북한 문제를 최대 국정과제로 삼고 ‘올인’하다시피 공을 들인 문재인 정부에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시작된 북·미 대화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큰 탓인지 몰라도 정부의 현재 상황 인식은 너무 낙관적이다.


북·미 실무협상 재개가 확정된 직후 급히 만들어낸 뉴욕 한·미 정상회담과 대통령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조급함이 묻어난다. 미국은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은 약간 흥분 상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에서는 북·미 대화 전망을 낙관할 만한 요소보다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더 많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미관계에 커다란 대전환이 일어날 것처럼 말하고 있다. 상황을 과장하고 있는 것인지, 실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실제로 이번 실무접촉은 쉽지 않은 협상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퇴진과 “리비아 방식은 틀렸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정책 변화와는 무관하다. 


볼턴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도한 적이 없고 미국이 지금까지 북한에 요구해온 것도 리비아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말한 ‘새로운 방법’은 그 실체가 있는지조차 아직 불분명하다. 북한이 이런 낌새를 모를 리 없다. 최근 북한의 대미 메시지에는 실무협상이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지 못한 미국에 돌리겠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한반도 상황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전쟁 위기의 한반도 상황을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한 바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업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반도 평화의 결실을 자신의 임기 내에 거둬야 한다는 조급함은 덜어내는 것이 좋다. 은행나무는 손자가 덕을 볼 것을 염두에 두고 심는다는 의미에서 공손수(公孫樹)라고 한다. 한반도 평화정착 프로세스는 공손수를 심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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